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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장
역말에 있는 시장
. 2, 7
일에 장이 섬
시흥역 터
역촌에 있는 시흥역의 터 조선 초에 시흥도역승을 두어서 신창의 창덕 예산의
일흥 덕산의 급천 언천의 순성 당진의 흥세 아산의 장시 평택의 화천 등 각
역을 관할하다가 그 후에 홍주의 금정역에 합병되었음.
에미니
오미니 오미리
역말의 남쪽에 있는 마을
역말 다리
역말 앞에 있는 다리
평전 들
역말 앞에 있는 들 고종 때 참판 수당 이남주가 일제의 무도한 침략에 항거하다
가 예산 고향에 돌아와서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대장 민종식을 숨겨준 혐
의로 왜경에게 피검 되어 공주 감옥으로 이송되는 도중 종시 항거하다가 이곳 냇
가에서 참혹하게 피살되고 그 아들 이충구와 종 김응길 역시 항거하다가 피살되
었음.
외암리 오양골 외암골
?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산리를 병합하여 아산군 송악면에 편입되었으나 본래는 온
양군 남하면의 지역으로서 시흥역이 있을 때 말을 가두어 먹이던 곳이므로 오양골이라 하던
것이 인종 때 이정
이 와서 살고 그 육대손 학자 이간이 호를 외암
이라 하였으므로
마을 이름도 같이 외암골이라 불렸음.
산막골 구산리
외암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 대원군이 강력한 쇄국 정책을 실시
할 당시 중앙의 고위 관리가 이에 반기를 들고 사직한 후 그를 동조하는
관리와 가족이 낙향 이곳에 정착해서
3
의 집을 지어 나누어 살았다 하
여 삼막골 이라 불러지게 되었음.
위 산막골
산막골 위쪽의 마을
아래 산막골
산막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반석
오양골 입구에 있는 반석 반석이 냇 바닥에 깔려 있고 마을 쪽으로 반석들이 누워
있는데 위 반석에는 외암동천 이라는 큰 글씨와 그 옆에 이용찬서 라는 작은 글
씨가 새겨졌고 아래 반석에는 동화수석 의 큰 글씨와 이백선서 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음.
북 바위
찬샘골 위쪽에 있는 바위 북처럼 생겼음
북박골
북바위가 있는 골짜기
삼박 골 삼박동
오양골 뒤에 있는 골짜기 큰 바위가 있음
삼박골
미륵
삼바골에 있는 미륵
새마을 세집매
산막골 위쪽에 있는 마을 세 집이 살았음
설화리
설화산 밑에 있는 마을
오양 골
외암리
외암 골
외암리
외암미륵
설화리 뒤에 있는 미륵 화강석으로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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