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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제
다 시 보 는
● ● ●
프로그램
13:00~13:30
식전공연행사
13:30~14:00
식전공연행사
14:00~14:30
의식행사/청백리시상
14:30~15:00
식후공연행사
15:00~16:00
소년소녀합창단공연
2
16:00~17:00
공연행사
17:00~17:30
재즈/라틴/에어로빅
17:30~18:30
맨요/시조/퓨전국악
18:30~19:30
맹사성 마당공연
6
19:30~21:00
초청 및 회원공연
21:00~
의식행사
맹사성 어록 써주기
문과시험(서예)
페이스페인팅
종 일
걸개그림그리기
9
사진, 시화전시회등
30
● ● ●
맹사성
(1360~1438)
청렴결백한 정치가이자 멋과 풍류를 아는 도인
孟思誠은 1360년(공민왕9)~1438년(세종20),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고려수문전제학 희도(希道)의 아들이며 명장
인 최영(崔瑩)의 손녀 사위이다. 온양 출신으로 11386년(우왕12)에 문과에 을과로 급
제하여 춘추관 검열이 된 데 이어 세종 13년에 좌의정이 되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
렸으며 청백한 선비로도 유명한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황희와 함께 조선 초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시문에 능하고 음률에도 밝아 향악을 정리하기도
했다. 또한 맹사성은 검소한 관리, 효자로 표창받아 정문이 세워졌으며 그가 직접 쓴
작품에 유명한“강호사시가”가 있다.
1435년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으나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반드
시 그에게 자문하였다 한다. 맹사성의 사람됨이 소탈하고 엄하지 않아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듯 공복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
고 돌아갈 때에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그는 효
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살림살이를 일삼지 않고 식량은 늘 녹미(祿米:조정에서 봉급
으로 주는 쌀)로 하였고, 바깥 출입을 할 때에는 소타기를 좋아해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혜로우면서도 청렴 결백한 맹사성의 성품
은 요즘 사람들에게 더욱 귀감이 되고 있다.
14 |
아산타이딩
A-san of Ti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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