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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8
제52호
제52호
지역학 칼럼
충남학 특강 - 조선조의 법제도와 규범문화
6.전통을잇고있는한국인들의법의식
다.
18)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를 조성함은 물론이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상처를 치료해 줌으
로써 자신의 범죄행위를 직접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형사정책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제
도이다. 범죄인의 인권도 잘 배려하고 있다. 감옥은 죄수들의 건강을 위해 운동시설도 갖추고 있었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사건의 처리에 명백한 전례가 있으면 그에 따랐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다. 경한 죄를 범한 죄수가 중병이 걸려 있을 때는 담당 의사가 살펴서 전옥관典獄官에게 알려 형조
법전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후대로 오면서 이러한 모습에 변화를 보이고 있긴
에 보고하여 보증인을 세워 석방하게 한다. 사죄死罪 이외에 부모상을 당한 자는 탈상(成服)할 때
하지만 법적 판단에 반드시 성문법전만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법적 사고가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까지 보증인을 세워 석방하며 산기가 가까운 산모의 경우에도 출산일 전후 합하여 3개월의 휴가를
일선에서 직접 법을 집행해야하는 지방장관들 대부분이 법적 사고에 무지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
배려하고 있다.
19)
사건이 발생하면 어느 종류의 사건이든 당사자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지
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학적 소재이기는 하지만 고무줄 같이 탄력적인 법적용은 『흥보전』 중 매 품
재심을 요구할 수 있었다. 원래는 수령·관찰사·형조 또는 사헌부의 삼복제도三覆制度지만 경우에
을 파는 흥부의 모습에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성문법에 의한 판결이 일반화 된
따라서는 국왕에게 직소하는 상언上言까지 4 심도 가능했다. 특히 사형에 처해야할 범죄는 반드시
것은 실제로 일제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 대략 100 여 년간의 일이다.
3 심을 거치게 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이 지방법원의 사형판결을 받아들여 항소하지 않을 경우 그대
1 세기라는 짧지 않은 기간 성문법 문화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왜 아직까지도 철저한 규범준수
로 형이 집행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조선왕조가 얼마나 인명을 중시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계급
에 익숙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수범자들이 공존적 삶의 조건인 사회질서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양반·상민·천민의 구별 없이 모두 당사자능력과 소송능력이 인정되었으며
들이는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인생살이는 물론이고 인간관계도 자로 재듯이
평민이 양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물론 기이한 일이 아니었다. 양반이 상민과의 시비분
엄격하게 유지될 수는 없으며 그런 각박한 관계설정 하에서는 결코 인간다운 세상이 구현될 수 없
쟁에 휘말려 상민으로부터 능욕을 당하는 일도 흔했다. 또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송을 제기할
다는 보편적 합의를 갖고 있다. 넉넉하고 훈훈한 정신문화를 누려온 한국인들에게 사사건건 실정법
수도 있었다.
20)
명종때는 재산상속에 관한 집단소송의 경우 승소했을 시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자
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사회는 도저히 익숙하지 않은 사회이다. 즉 필요한 만큼 성문법을 지키고 필
녀도 상속분을 평균지급하도록 법제화했다. 조선 시대의 사법제도가 결코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지
요한 만큼 적당히 어물쩍 넘기는 적법과 탈법의 경계선 상을 기가 막히게 줄타기하듯 살아온 민족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인 것이다.
백성들 대부분이 농민인 조선시대에는 농민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농번기에는 일체의 소송의
성문법을 기반으로 하는 대륙의 법문화는 사회와 국가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성문법으로 흡수하
제기 및 계류중인 소송의 심리를 중지하는 것이 건국 초부터의 정책이었다. 즉 춘분에서 추분에 이
여 처리할 수 있다는 체계적 사고 위에 구축되어있다. 그러한 법체계로 부단히 변하는 삶의 동태적
르는 농번기에는 소송의 심리를 정지한다. 이것을 무정務停이라 한다. 그러므로 소송은 추분에 개
모습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영국이나 미국처럼 오로지 판례를 통해 형성된 불
시되어 춘분까지 계속된다. 이것을 무개務開라 한다. 대부분의 가벼운 범죄는 무개를 기다려 심리
문법에 철저할 경우 다원화된 현대적 삶의 공통적 행위원칙과 좌표를 설정해줄 수도 없다. 오늘날
되는 데 이를 대시待時라 하며 죄질이 무거운 범죄 이를테면 십악十惡의 죄 등은 심리 개시일을 기
체계적 장점을 지닌 성문법 문화와 동태적 탄력성을 강점으로 하는 불문법 문화는 점점 서로를 필
다릴 수 없는 중한 범죄이므로 곧바로 처결된다. 이것을 부대시不待時라 한다.
요로 하면서 접근해가고 있다. 그 길만이 다원화된 인간의 가치와 삶의 형상을 그려 낼 수 있으며
대체로 보아 전통에 잇닿아 있는 우리의 법문화는 성문법적 이면서 필요할 경우 적절히 불문법적
또한 공동체적 삶의 체계 속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유전인자 속
인 특성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 그러한 기반이 이미 조성되어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21세기의 바람직한 법문
화를 기대해 보는 나의 바램이 기우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18) 『大明律』, 「刑律」, ‘保辜限期’ 
19) 『大典會通』 「刑律」‘恤囚’ 
20) 박병호, 「법률생활」, 『조선시대 생활사』, 389쪽, 역사비평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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