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10페이지

139페이지 본문시작

하였다.집의김협(金協)이아뢰기를,
“지금권문(權門)에머뭇거리는자는모두인아(姻?)의유입니다.조금이라
도 조행이 있는 사람이면 누가 그 집에 찾아다니기를 즐겨하겠습니까? 이항
이 아뢴‘불시로 어진 사대부를 소개하라.’는 것은 옳으나 분경금법이 부당
하다고해서혁파하려는것은잘못입니다.”
하였다.
◎1514년(중종9)2월11일(을사)
주강에나아갔다.전경(典經)김구(金絿)가아뢰기를,
“호씨(胡氏)가이르기를‘일은힘쓰기에달려있다.’하였으니,이는임금이
마땅히 유의해야 할 대목입니다. 만약‘학술(學術)이 이만하면 족하고 치도
(治道)가 이만하면 족하다.’하여 구차스럽게 구습에 얽매인 채 기약이 없으
면,공을이룰수없고일을종결시킬수없는것입니다.”
하니,상이이르기를,
“이 말이 매우 옳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임금노릇 하기가 어렵다.’하
였고
《서경(書經)》에 이르기를‘임금은 그 임금됨을 어렵게 여겨야 한다.’하였
으니, 임금된 이가 그 임금된 도리를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항상 그 어려
움을잊지않는것이가하다.”
하였다.
◎1514년(중종9)2월14일(무신)
석강에 나아갔다.《송감(宋鑑)》을 강하다가‘이(利)를 말하는 무리를 내치고
절용(節用)과 애민(愛民)에 힘썼다.’는 대목에 이르러, 전경(典經) 김구(金
絿)가아뢰기를,
“절용과 애민이라는 말은 큰 것이니, 임금이 애민을 근본으로 한다면 우락
(憂樂)을 반드시 백성과 같이 해야 합니다. 상께서 즉위하신 이래, 절용과
애민을 위하여 잡역(雜役)을 견면(?免)한 것은 지극한 일이나 마침내 효험
138│묵향의본향에서조선4대명필자암김구를만나다

13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