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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왔는지 명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다만 명에서 귀화한 후손으로서 병자호란(1636) 이후 남쪽으
로 이주하게 되어 아버지 대에는 충북 진천에서 한동안 살았다. 그 후 어느 시기엔가 그가 아버지를
모시고 온양에 와서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략 350년 전으로 추정한다. 천신조와 아버지 천광진
의 묘는 온양 법곡동 능미에 있었으나 2004년에 도고면 석당리로 이전했다.
천신조의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외아들 무일(茂逸)을 두었다. 지금까지 후손이 이어지면
서 영양천씨 온양파(溫陽派)가 형성되었다. 자손이 많지 않은 편이며 오랜 동안 용화동 일대에 거주
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실옥리 시루골로 이주하였다. 후손들은 실옥동을 중심으로 하여 온천동, 송악,
염치, 인천, 서울 등지에 살고 있다.
[143] 해주최씨 최덕계
| 崔德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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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인물로 강화최씨(江華崔氏) 14세이며 제정공파(齊貞公派) 아산시 지역, 도고면 덕암리
입향조이다. 현재 덕암리에 거주하는 21세(世) 최낙준(71세)씨의 7대조이다. 선대는 안성 일죽면 지역
에 살았다.
최덕계는 조선 초에 형조판서를 지낸 파조 제정공(齊貞公) 최용소(崔龍蘇, ?∼1422)의 5세손이다.
고조는 군기시 부정을 지낸 최세창(崔世昌), 증조는 종부시 첨정을 역임한 최복해(崔福海), 조부는 아
산현감을 지냈으며 1457년(세조3년)에 원종공신(原種功臣) 3등으로 녹훈(錄勳)된 최연년(崔延年)이
다. 아버지는 종사랑 최황(崔滉)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그는 덕혼(德渾), 덕렴(德濂), 덕계(德溪) 등 3남3녀 중 셋째아들이며 자는 사도(師道)이다. 사마시
를 거쳐 정릉(靖陵)참봉을 지냈다. 부인은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진사 권석순(權石淳)의 딸이다. 인근
마을에 안동권씨가 들어온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기 때문에 혼인과 관련된 것은 알 수 없다. 시기도
막연하게 1550년을 기준으로 약 460년 전의 일로 추정한다.
최덕계는 경린(慶麟), 서린(瑞麟), 상린(祥麟) 등 3남2녀를 두었다. 첫째 최경린은 부장(部將)을 지
냈으며 후손이 영인과 수원 지역에 퍼졌다. 둘째 최서린도 전력부위로 부장을 역임했으며 후손이 가
장 많고 도고 지역에 많이 거주하며 천안 목천과 원성동, 마산, 서울 영등포 지역 등에 널리 분포한
다. 셋째 최상린은 부정(副正)을 지냈으며 후손의 일부가 도고에 있고 외지로 많이 이주하였다.
최덕계와 직계 후손 몇 대의 묘는 도고면 덕암리 홍제원 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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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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