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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을 드릴 때는 반드시 이 물을 떠다 사용하였다. 두레박을 사용하는 샘이었다. 마을에 있는
샘물은주민들만사용하였고월도사람들은사용하지못하게하였다.
월도와 한여 마을은 서로 연락을 하였으나 가깝지는 않았다. 월도 주민들과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오포리 가그말 사람들이다. 가그말 사람들이 월도에 물, 나무, 쌀 등을 주고 고기
로 바꾸었다. 서로 생산물이 달라 바꿀 필요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월도 사람들은 이렇게
가그말과교류하는것을‘가그말살이’라고하였다.
한여마을에는방파제는없어도장벌에배를대기가좋아옛날부터많은배가들어왔고,
술집도많았다.최고많을때는4곳의술집이있었고,이응두씨가본술집도3곳에이른다.
술집에젊은여자를고용하지는않았다.
한여마을 주민들은 섬 주민들과 혼인을 많이 하였다. 이응두 씨가 기억하는 경우만 해도
월도에서3명,호도에서1명,원산도에서1명이시집을왔고,녹도로1명,황도로1명이시집
을 갔다. 특히 녹도의 박씨 댁에서는 형제가 한꺼번에 결혼하였다. 형은 마동의 처녀와, 동
생은한여의처녀와한날결혼하여,함께배로실어갔다고한다.
한여마을에서처녀총각들이사랑을나누다가들켜내쫓기는일이두어번있었다.남자
여자를모두쫓아냈는데,나가서결혼해서살지는못했다고한다.마을이집성촌이기때문
에결혼할수없는처지여서쫓아냈다고한다.쫓아낼때는주민들이회의를해서결정했다
고한다.
보령화력발전소가들어서면서여수해마을과한여마을이최초로이주되었다.이때한여
마을 주민들은 살던 마을, 언덕 너머에 있는 솥바리로 모두 이주하기로 하였다. 원 마을에
살던때보다더깊은정을가지고살았다.그러나솥바리에이사한지10여년이지난후,발
전소가증설되는바람에다시이주하였다.이번에는주민들이갈라져뿔뿔이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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