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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아들 채응희는 아산에 자리를 잡았지만 얼마 뒤에 손이 끊어졌다.
채봉장의 묘는 천안 풍세면 삼태리에 있으며, 셋째아들 채응정의 묘는 탕정 명암리에 있었으나 산
업단지 개발로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곳으로 이장하였다. 채봉장의 5세손 채동교에게 효자정려가 내려
졌고 채관묵의 효자기적비가 세워지는 등 효행과 학문의 가풍이 있었다.
후손들은 아산시 지역에서는 염치 대동리 황골, 음봉 덕지리, 선장 죽산리를 중심으로 하여 온양 시
내 및 인근 곳곳에 퍼져 살고 있으며 천안 풍세, 목천, 백석동 등과 공주 지역에도 확산되어 퍼져 있다.
[142] 영양천씨 천신조
| 千愼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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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인물로 영양천씨(潁陽千氏) 5세이며 정랑공파 아산시 지역, 온양 판교리(현재 용화동)
입향조이다. 선대는 주로 함경북도 명천군 일대에 살았다. 송악면 궁평리에 거주하는 18세(世) 천경
석(千慶錫)의 13대조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조병영양사 겸 총독장(總督將)으로 조선에 와서 공을 세운 뒤 귀화한 중
시조 화산군(花山君) 천만리(千萬里, 1543~?)의 현손이다. 한성부좌윤 천상(千祥)의 증손이고 호조
정랑을 지낸 천태주(千泰疇)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천광진(千光晉, 일명 흥보(興甫)이고 어머니는 경
주이씨(慶州李氏)로 이의경(李義敬)의 딸이다.
천신조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되었다. 그가 언제 왜 온양으로
-천신조의 묘와 후손들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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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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