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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1418년(세종 즉위년)에 세종이 전국의 충효절이 있는 사
입에 넣어 드렸으며, 몸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빼드렸다고 한다. 또한 병이 드
람들을 조사하라는 명에 의해 지신사(知申事: 왕명을 출납하
신 어머님의 변을 맛보아 상태를 알아보고 약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극한 효성이 알려
는 벼슬) 하연(河演)이 이 사실을 보고하여 조정에서 표창하였
져 지역 유생들이 상소하여 조정이 효자 정문을 내려 그의 효심을 기렸다.
다. 현재 비는 1497년(연산군 3)에 세운 것이다(충남 유형문화
다음은 김구(金絿, 1488∼1534)의 효행이다. 김구는 중종 2년(1507)에 생원과 진사 두
재 제102호). 이 비는 1978년에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가맹이
시험에 모두 장원 급제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고상하고 행동이 독실했으며 학문을 연구하여
다리’ 근처에서 발견되었고, 현재는 예당저수지를 만들 때 수몰
중종 14년 홍문관 부제학에 제수되고, 조광조와 더불어 지치주의 왕도 정치를 행하고자 하
되지 않도록 대흥면사무소 앞으로 옮겼다. 이성만ㆍ이순 형제
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남해로 귀양갔다. 김구는 15년 동안이나 귀양을 갔다가
는 부모에게 항상 맛난 음식을 마련하여 봉양하고, 부모가 돌아
고향 예산에 돌아왔을 때에는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뒤였다. 그는 부모 산소에 가서 통곡하
가시자 형은 아버지의 묘를 지키고 동생은 어머니의 묘를 지켰
며 산소에 머물렀다. 이때 그가 뿌린 눈물 때문에 산소 근처의 잔디풀이 모두 말라 죽었다는
다. 또한 3년상을 마친 후에도 아침에는 형이 동생의 집에 가고
말이 전해 내려온다. 그도 이후에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문장에 능하였으
저녁에는 동생이 형의 집에 가서 아침저녁을 항상 같이 먹었으
며, 그의 글씨 또한 이름나 조선을 대표하는 서체를 이루었다. 예산 신암면 종경리에 자암선
며, 한 그릇의 국도 함께 먹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생 신도비가 있다.
형은 아우 쪽의 볏단에 아우는 형 쪽의 볏단에 밤중에 벼를
다음은 효자 인영원(印榮源) 부부의 효행이다. 예산 덕산면 낙상리에 인영원 부부의 효
나르다가 서로 만나는 내용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내용이 실리
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쌍효각(雙孝閣)이 있다. 그의 본관은 교동(喬桐)이고, 경릉참봉(敬
陵參奉)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숭정대부 판돈녕부사에 추증되었다. 부인 성주배씨(星
기도 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우화로 전해 오다가 1956년
州裵氏)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정경부인에 증직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지극히 공
~2000년도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50여 년간 좋은 형
제애와 가족애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의좋은 형제’ 이야
경하여 효자로 칭송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지극히 공양하였고 결혼 후
기는 2001년도의 제7차 교육과정에서 국정교과서에서 빠졌
에도 부부가 지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위중하자 치료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으며,
다가, 다시 2005년부터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수
뒷산에 단을 쌓고 정성으로 기도를 드려 병이 나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나은 후에도 부
록되어 전국 청소년들의 전통윤리 교육 자료로 제공되고 있다.
부는 계속 지성을 드리니 17년을 더 사셨다고 한다. 이들의 효성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1978년 대흥면 상중리에서 우애비(충
서 그 부부를 기리는 부부쌍효각을 세웠다.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
???출처:문화재청
남도 유형문화재 102호)가 발견되어 역사적 사실로 밝혀졌다.
다음은 효자 전근금의 효행이다. 예산 광시면 미곡리에 전근금의 효자 정문이 있다. 전근
2002년에는 대흥동헌 앞에 의좋은 형제상을 건립하였고, 2004
금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한 선비의 후손으로, 학식은 높았으나 농사를
년에 의좋은 형제 테마공원을 조성하여 전국민이 방문하는 명
지으며 살았던 선비였다. 그는 아버지가 병이 들자 정성으로 보살폈으나 사망하자, 슬픔을
소가 되었다.
이기지 못하고 병이 들었다. 그가 병이 들자 어머니가 아버지와 똑같은 증세로 병이 들었다.
다음 예산의 이름난 효자로는 강만채 · 강만구 형제가 있다.
어머니의 병을 걱정하다가 하늘에서 “너의 피가 어머니의 몸에 흐르면 병이 나으리라.”는
예산 신암면 용궁리에 강만채 · 강만구를 기리는 효자 정문이
소리를 듣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어머니 입에 넣어드려 어머니가 병이 나았다고 한다. 전근
있다. 강씨 형제는 병이 든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의좋은형제
금의 효성이 알려져서 조정에서 효자비를 세웠다.
3.선비의고장,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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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의뿌리예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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