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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지고 있었는데, 깃발을 가지고 국수봉에 오르지는 않았다. 마을사람들 모두 그냥 배에서만
지냈다.
한여 마을에서도 옛날에는 공치기를 하였다고 전한다. 이응두(1937)씨 보다 10여 세 위
분들의 놀이였는데, 공치기를 하던 곳을 공터라고 불렀다. 마을에는 큰 팽나무가 2그루 있
었다. 단오가 되면 어른들이 동아줄을 틀어 그네를 매 주었고, 마을의 처녀들이 탔다. 팽나
무는발전소가들어서면서베어졌다.
이응두 씨가 15세쯤 되었을 때 마을에는 꼬댁각씨 놀이를 많이 하였다. 꼬댁각씨 놀이는
처녀들의 놀이로, 대략 5명 정도의 처녀들이 방에 둘러 앉고, 꼬댁각씨를 잡는 이응두 씨가
가운데에서 들축나무 가지를 잡고 있으면 처녀들이 주문을 외운다. 처녀들의 주문이 이어
지면 신이 내려 대가 움직였다. 그러면 처녀들이 들축나무에 내려진 꼬댁각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게된다.주로‘누구는언제어떤사람하고결혼하게되나요?’하는식이다.놀이는웃
지 않고 조용하게 이루어졌고, 꼬댁각씨에게 존댓말을 썼다. 마칠 때는 어떤 절차 없이 그
대로끝났다.
한여마을은바닷가,자갈과모래로된언덕위에있었고,그안에있는습지는논으로개
간되었다. 사리 때 바다 수위가 높아지면 바닷물이 논으로 들어가고, 장마 때에는 논물이
불어나 배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수문이 필요하였다. 수문통이라고 불렸고 문은 나무판자
였다.마을에서당번을정하여관리하였다.
한여 마을은 간첩이 상륙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군인들이 주둔하였다. 마을 북쪽 옆산
에 있었는데 1개 분대의 병력이 주둔하였다. 1980년대에는 마을 앞으로 간첩선이 지나가,
오천면 영보리까지 갔다가 발각되어 잡은 일도 있었다. 한여 마을에 경찰들은 근무하지 않
았다. 6·25당시 적 치하에서는 인민군 1개 분대가 한여 마을에 들어와 주둔하였다. 그들은
해안을 감시하고, 산에 호를 팠다. 상륙하는 연합군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호를 파기 위
하여주민들을동원하였고,대천등먼곳에서주민들을동원하기도하였다.그들은마을에
직접해를끼치지는않았고,후퇴할때는밤에감쪽같이없어졌다.
한여마을에는2개의샘이있었다.마을안에있는샘은염기가있어좋지않았지만,마을
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가패샘은 물이 아주 좋았고 용출되는 양도 많았다. 각 가정에서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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