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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물이 깨끗하여 해수욕하기 좋았다. 마을 앞에는 형제바위라고 불리는 멋있는 바위가 있었
고 주민들은 바위 앞에서 조개도 잡고 부말도 잡았다. 밤에는 낚시질을 하여 붕어지(붕장어
과의바다물고기)나우럭을잡았다.한여마을형제바위앞에는주벅녀라는바위가있었고,이
바위 근처에서 주벅을 맸다. 잡는 고기는 열치같이 떼로 다니는 작은 고기들이었다. 멸치같
이작은고기는잡지않았다.
한여마을에는예부터배를가지고있는사람들이많았다.아주옛날에는대부분주낙으
로 고기를 잡았고 근래에는 통발로 고기를 잡았다. 한여 마을에 통발 배가 4~5척 있었고,
원산도 밖,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이응두 씨도 태안 신진도 앞에까지 나가 고기를
잡았다. 주로 잡히는 고기는 아나고, 우럭, 놀래미, 박하지(민꽃게) 등이었고 박하지를 가장
많이 잡았다. 미끼는 주로 고등어를 썼다. 잡은 고기는 안흥항이나 대천항에서 팔았다. 한
여마을에는먹을것만가지고왔다.
한여마을에어업하는가구는많았지만,국가에서만든방파제는없었다.원산도와안면
도가파도를막아주는역할을해서잔잔한바다를이루기때문이다.그러나태풍이예보되
면 배를 오천항으로 옮긴다. 이때는 마을 주민들 모두가 나와 협력해야 하였다. 배를 내릴
때도마찬가지다.
한여 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김발을 맸다. 주변에서 가장 먼저, 은포리보다도 먼저
김양식을 하였다. 장소는 딴산 앞이었고 품질이 좋아 서울에서도 유명하였다. 한여 마을에
서는 집집마다 김발을 맸다. 이응두 씨는 김발을 30떼나 매어 양식하였다. 김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떴다. 마을 처녀들과 은포리 처녀들까지 불러 김을 떴는데 하루 생산량이 20~30
톳이나되었다.김을말리는것이큰문제였다.처음에는햇빛에말렸으나나중에는창고에
난로를놓고말려,안정적으로말릴수있었다.김양식으로높은소득을올렸다.
주교면 고정리 사람들, 즉 사당굴, 마동, 한여 사람들은 국수봉에서 당제를 지냈다. 국수
봉 꼭대기에는 어떤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신수(神樹)로 나무가 서 있었고, 돌로 말을 만들어
놓고 당제를 모셨다. 당제 모시는 것을 이응두 씨는 보지 못했다. 한 세대 전의 이야기이다.
그래도국수봉꼭대기에는현재까지옛날에만들어놓은부서진말이있다.
이응두 씨가 배사업을 할 때에는 선장실에 상을 차려놓고 뱃고사를 지냈다. 오색기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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