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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諺制), 언정(諺正), 언호(諺浩), 언업(諺業)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이들은 주로 신창면 신
달리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손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후손들의 묘도 인주면 냉정리와 대음리 일
대에 있었는데 지난 2007년에 냉정리 악항에 납골묘를 조성하고 광문사(光文祠)라는 사당을 세웠다.
현재 후손들은 신창면 신달리와 남성리, 영인면 신운리, 인주면 밀두리와 대음리, 둔포면, 천안 성
환 등지에서 살아오고 있다.
- 연안차씨 재실과 차유명의 묘 -
[141] 평강채씨 채봉장
| 蔡鳳章
<1654년(효종5년)~1729년(영조5년) >
조선 후기의 인물이며 평강채씨(平康蔡氏) 17세(世)로 소감공파(少監公派)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 입
향조이다. 선대는 주로 경기도 양주에 거주하였다. 현재 염치읍 대동리 황골 마을에 거주하는 후손
28세(世) 채희윤(蔡熙允, 80세)씨의 11대조이다.
그는 선교랑 채충익(蔡忠益)의 증손이고 진사로 통진현감을 지낸 채영후(蔡榮後)의 손자이다. 아버
지는 진사시에 급제하고 문장이 뛰어나 시집을 남겼으며 통정대부로 추증된 채시경(蔡時鏡)이다. 어
머니는 전주이씨로 이인(李
)의 딸이며 6남4녀를 두었다.
채봉장은 셋째아들로 자는 자의(子儀)이다. 부인은 담양전씨(潭陽田氏)로 전기윤(田起尹)의 딸이다.
응복(膺福), 응록(膺祿), 응정(膺禎), 응상(膺祥), 응희(膺禧) 등 5남1녀를 두었다.
그가 언제 어떤 사유로 아산으로 들어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의 셋째아들인 채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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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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