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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선명의 사이에 5형제가 시준과 중대, 부흥, 춘흥, 수흥인데 부흥씨
가 25세에 사망하고 춘흥과 수흥 씨는 서울에서 살았다 한다. 김명창 가
문이 항구도시인 군산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十三) 근데 명창 채돈은 부친 시준과 본 모친 조 씨 사이에 장녀로 채분과 채
손, 채선 장남 채근 등 1남 3녀 중 장남과 3녀는 결성에서 소시에 사망
하였고 모친 조 씨가 사망 후에 1924년 진용분과 재혼하여 채돈과 채숙
그리고 장남 채만 과 2남 한우(사망) 3남 충치(사망) 4남인 귀남 등 6남
매 중 2녀 2남이 생존하였다. 채돈(采敦) 명가수는 서울에서 활동 중에
「선초」라는 예명을 써왔으며 동생인 채숙이도 음악을 하게 되어 예명 선
초를 빌려준 바도 있다고 한다. 또한 채돈 씨 와 신한일보와 직접인터뷰
때도 조상의 고향이 충청도 결성이라고 증언한바 도 있다고 전한다.
(十四) 결론은 김창용 명창 가문에 대하여 늦게 밝여진 결론은 오랜 세월이 지
난 1925년도 즉 87년 전에 전 가족이 멀리 이사로 왕래가 두절되었다.
대략 중요한 내용을 다시 지적하면 1940년(조선일보사)에 발간한 정노식
의 조선창극사 에 본고향 결성을 서천으로 오인하고 호적의 인적사항을
정확히 모르는 채 남긴 기록으로 잘못이 컸다. 김 명창 가문 관향이 김해
(金海)라는 것도 모르고 조부 김성옥의 아들 『정근(正根)을 定根(정근)이라
하며 昌用(창용)을 昌龍(창룡)으로 1870년생을 세계 인명록에도 1871년
또는 1872년』으로 1943년에 사망을 멀쩡하게 공연 활동 중인데 1935년
에 사망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큰 오류로 한국의 국악사에 큰 오점을 남겼
다. 지금이라도 선인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위와 같은 내용을 살
펴 볼 때 5대 명창 김성옥 과 김정근, 김창용, 김시준, 김채돈 등은 대대
로 중고제를 전승해온 결성의 명창들이 분명하다.(채돈씨는 점차 현대음
악가로 전환하여 일본에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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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토문화(洪州鄕土文化)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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