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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절을잃어버린여인.


윤창순은 청양군 청남면 윗상장리에서 태어나 결혼하기까지 한 마을에서 살아온 여인


이다.아버지는칠원윤씨가문의사람이라는것을자랑스럽게생각한인물이다.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많이 수입되었던 일명 포대 자루의 재료가 되는 마포를 강경장에서 떠다가
정산장이나청양장청남인근에팔아돈을벌었기에가정도빈곤하지는않았다.또한2남
6녀의자손을두어성가를이루었으며자식사랑이남달랐다한다.
어머니 임씨는 당시로는 신식 생각으로 산 사람이라 일찍 장사를 시작하여 집을 비우
고 원행 장사를 다녔다. 모든 일에 솜씨가 좋아서 장사를 나가기 전, 그러니까 윤창순이
13-14세 경에는 길쌈을 가르쳐 배웠다. 논밭이 있어도 많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
이 장사로 치부하여 논밭 일을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밭일로 고생하지도 않고, 여유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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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만한 생활환경이었다. 그런데 90을 넘긴 그녀는 자신의 유년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야
기를한다.
“핵교는일제에숨어댕기느라구못댕겼어.”
그뿐아니다. 친구도 없었고 놀이를 즐기기도 못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것이
집안에서일을많이해서라한다.자신이살아온험난한세월속에아마도소녀시절의추
억을모두잃은것으로보였다.
가난으로시작했던신혼
청양군 청남면의 금강변 마을에 살았던 그녀는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않았다. 마
을에서숨어있다나오는정도였지만인민군은보지못했고마을에서사람이죽는일도없
었다.그렇게성장한그녀는당시로는조금많은나이인22세,1954년에공주사람이한복
과혼인하였다.신랑은그녀보다한살많았다.신랑이마음에들어친정에서초례를치루
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댁에 왔는데 시집의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농토는 적고 소작으로
농사를 짓는 형편이었다. 전쟁을 겪고 가난에 빠져 허덕대고 있었다. 더구나 마을에 방앗
간이없어절구질과디딜방아로삼시세때음식을만드는형편이었다.
“일만했어.젖멕이를집에뉘여놓구두일을해야했어.”
그러나신혼생활은농사일이나살림보다더큰어려움이있었다.시어머니와시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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