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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호적 사항이 조선 시대의 호적단자(戶籍單子)를 민적부(民籍簿)로(일제강점
기 초 1910년 한일합방 직후)일본 호적 규정에 의하여 인적사항의 생물
연대 등을 일본 년 호로 일제히 바꾸고, 생존자 본위로 호적 정리한 후
개명까지 한 사실을 발견(홍성군 결성면사무소 제적부 참조)
(五) 결성 용호리 이웃에서 같이 살았던 백무현(1910년생의 40여년 연상)씨가
이사 간지 3년 후 군산항 영정골목에서 항구 하역 작업 중에 김창용 명
창을 만났는데 상봉 시에 서천에서 살며 군산 극장에서 공연 중이니 구경
오라고 해서 3번을 가서 만났고 잘 구경한 바도 있다고 수차 증언하였다.
(六) 용호리 근 동리에서 살펴 평소 무시 때도 김창용 가정집에서 또는 가설무
대에서 광대놀이와 줄거리 등 공연활동을 자주 봤다며 교항리 서지 동 안
상달(1906. 11. 3. 생)씨와 구수동 조종락씨(100세) 두지동 조백석 (97세
생존)씨 등은 원래 결성인으로 김해김씨 일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전해
듣고 외지서 이사 왔다고는 못 들어 봤다고 하며 결성 용호리 소리꾼이었
다고만 증언하고 있다.
(七) 元 本籍址 忠淸道 結城縣 龍川面 龍湖里 德隅(원 본적지 충청도 결성현 용
천면 용호리 덕우인데 1917년 10월 1일 용천면이 결성면으로 개칭)이다.
(만일 서천인이라면 민적부(民籍簿)에 전적한 사유가 당연한데, 전무함.)
(八) 홍성 오관리 이항직(95세 생존) 선생은 서천이 고향으로 김창용 명창 둘
째 아들인 중대씨의 아들과 한산 초등학교 (지현리) 동창인데 아버지 등
선대의 고향이 ‘결성’이라고 수차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九) 막내아들인 수홍(부월)씨가 30년 전까지도 일가 집에 겸사 다녀간다고 백
무현씨 댁에 들여 자주 만났다고 생존 시에 전해왔음.
(十) 현재까지 한말의 유명한 명창 호적 발견은 송만갑 명창 제적등본 발견 후
처음으로 발견 된 통쾌한 사실이다.
(十一) 김창용 가문의 4대가 대대로 살아온 결성면의 호적 내용은 民籍簿(민적
부)의 事由(사유) 난에 명확히 大正七年(대정칠년) 入月(입월) 貳拾七日(이
습칠일) 命名(명명)이라 등재된 제적부가 증명서이다.
(十二) 1895년 호주 김정근의 사망으로 인하여 김창용 형 영수씨가 호주 상속
되어 모친은 영동 장정희씨와 독신인 영수씨 그리고 창용씨와 부인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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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향토문화 회원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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