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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이문수(李文秀)(1840년대전후)
신양초등학교가 설립되던 때 그 개교의 첫교실이
었던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을 건조(建造)했으
며이곳(현재의신양면서계양리)에세거(世居)하
는명문가(名門家)전주이씨의후손이다.
이문수는신양면의달천(達川)과죽천천(竹遷川)
이 합류, 격양촌(擊壤村)에서 내천(奈川)을 이루
어서류(西流)하여예당호로흘러가는합류지점의
이문수가 건립한 일산이수정 (신양면 서계양리)
작은바위봉우리위노목숲속경치좋은곳에기와
지붕의 정자를 짓고 1849년 추사 김정희선생을 초대한다. 이유인즉 정자 이름을 짓고 현판
휘호를 간청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며 추사를 초빙한 이문수는 4~5일간 추사를 극진히 대접
했는데 이때는 추사가 제주도 귀양에서 9년만에 풀려난 다음해였다. 문헌에 보면 이문수를
옹(翁)이라칭했고추사는당년65세였으니서로비슷한연령이었으리라추측된다.
추사는3~4일에걸쳐정자이름을이렇게도쓰고저렇게도짓고4~5매를썼다.그런다음
이를모두벽에붙여놓고앉아서도바라보고누워서도바라보고하더니떠나던날그중의한
장만주인에게남기고나머지는모두주머니에넣고갔다고전해진다.
추사는정자의이름을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이라고짓고한자(漢子)로“一”자와“山”자를
아래위로 겹쳐 “ 二水亭 ”으로 엮어서 단순한 첫글자 “一”자와 복잡한 끝글자“亭”자와의
균형을 유지해서 종이에 휘호했는데 그 후 근동(近洞)의 학인(學人)들이 이 정자에 모여서
공부도하고시도짓고풍류도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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