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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험에 장원급제했는데, 중부(仲父) 종사랑 김담의 후계로 나갔다. 딸은 전력
부위 이사항에게 시집을 갔는데, 진사를 지냈다. 김균은 처음에 진주 강씨를 아
170)
내로 얻었지만 자식이 없자 함양 여씨 경력
여공정의 딸을 다시 아내로 얻었
다. 아들 하나를 얻으니 이름이 온(?)으로, 헌납을 지냈다. 세 번째로 전주 이
씨 세종대왕의 증손 영평 이정보의 딸을 아내로 얻어 1남 1녀를 두었다. 사내
의 이름은 김갑으로, 별제를 지냈는데 백부 김용의 후사로 출계했다. 딸은 좌찬
성에 추증된 순계군 안세복에게 시집을 갔으니, 나의 왕모가 되신다. 부위에게
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이희용으로 평시서직장을 지냈다. 이렇게 안
밖의 자손으로 현재 살아 있는 이들만도 백여 명에 이른다. 내 아버지 순양군
안몽윤은공의외증손이되신다.
가만히 말하건대 공의 사업은 비록 국승(國乘)에 실려 밝게 볼 수 있지만,
묘소에는 비지(碑誌)가 없으니 백세의 뒤에는 이를 아는 이들이 없을까 걱정되
171)
었다. 마침내 종손 김백휘가 풍비
를 세워 황천에 까지 닿도록 할 것을 계획
하여 나로 하여금 세계(世系)와 관직을 기록하게 하고 다시 무덤 속에 묻으려고
했는데, 연대가 이미 오래되어 전해지는 기술이 자세하지 않으니 실제의 덕과
공적은 만분의 일도 실지 못했다. 다만 들은 것을 삼가 여기에 기록하여 무덤구
덩이남쪽에넣어두어영원히보존되기를바랄뿐이다.
170)경력:조선시대 도평의사사, 관찰사의속관, 충훈부, 의빈부, 의금부, 개성부, 오위도총부, 사평부
등에속하여실무처리를맡았던종4품의벼슬.
171)풍비:공덕을기리어세우는큰비석
6장_1.자암김선생묘지(안응창)│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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