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3페이지

14페이지 본문시작

한편 ‘길’을 한자로 쓰면 일반적으로 ‘도로(道路)’라고 하는데, 도로와 관련된 한자도
『주례(周禮)』의 주석에 의하면 규모와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글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경(徑)은우마(牛馬)를수용하고, 진(軫)은대거(大車)를수용한다. 도(?)는승거(乘車) 한
대를수용하고, 도(道)는두대를수용하고, 로(路)는세대를수용한다.”
고하였다. 이에
2)
따르면, 우리가일상적으로사용하는도로(道路)라는용어도서로다른규모임을알게한
다.‘도(道)’보다는‘로(路)’가길의규모에서볼때더큰길임을규정하고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조선시대에홍성지역에서볼수있었던길의모습은어떻게존재했을까? 『주
례(周禮)』나『경국대전』을참고하면, 조선시대에홍성지역에서찾아볼수있는길은도로
(道路)의규격에맞게만들어진길을생각하기쉽다.그러나조선시대의외방도로는길의
폭보다마필(馬匹)과역촌(驛村)의주민수를기준으로등급을정하였기때문에도로의폭
이 불규칙하였고 대로(大路)가 소로(小路)보다좁은 경우도 많았다.
더불어 사람과우마
3)
(牛馬), 달구지 등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든 흙길은 수시로 보수하지 않으면 쉽게 파손되
는단점이있었는데, 집중호우와같은자연재해나, 전쟁과민중봉기등으로인한정부의
통제력 약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져 도로의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몇 년 동안 방치하면
수레는 물론 사람과 우마도 통행하기 힘든 길이 되기 쉽다.
이와 관련하여 비숍
4)
(Bishop)은1898년출간한기행문에서한말의도로사정에대하여,“건설된도로란거의
없고 … 도로의 노면이 울퉁불퉁한 닦이지 않은 오솔길이다. … 다리는 대부분 나뭇가지
와뗏장따위로 만들어져홍수에떠내려가면10월 중순까지복구되지않는다. … 산간지
방의도로중에는토석으로덮인개울바닥에지나지않는경우가많다.”라고하였다.
5)
尺)으로이를측량하여매30리마다하나의푯말을세우되, 혹은토석(土石)을모아놓던가, 혹은수목
을심어서표지하게하소서. 하니, 그대로따랐다. 癸巳/兵曹啓: 各道驛路里數, 相距不一, 如有軍務重事,
稽留不及者, 憑考檢擧實難, 宜漸次改量。 而平安道, 朝廷使臣來往之地, 宜先正之。 請以新造步數尺量之, 每
三十里立一標,或聚土石,或植樹木以識。從之.”(『세종실록』93권,세종23년8월29일癸巳)
2) 류명환, 2012, 『도로고』 ·?여지고?의도로체계와『동역도』의비교연구, 부산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
논문에서재인용(12~13쪽).
3)최영준,2004,『한국의옛길,영남대로』,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p.189.
4)최영준,앞의책,180쪽.
5)최영준,앞의책,178쪽에서재인용.
조선시대의 길_13

1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