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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
제53호
제53호
지역학칼럼
예산학특강-내포지역의개신교전래
1937년 석조로 된 50평 2층 양옥 예배당을 건축하였는데, 1939년 평양의 임종순 목사를 초청하
구하고그교회의신자2명이기독교인이라는이유만으로신뢰를받아남들보다쉽게대출받은것이
여이예배당에서열린지방대사경회에는유사이래처음이라고할만큼성황을이루었다.
지역사회의화제가되었다.주민들은효교교회의예배당신축과교인들의성공을놀라운눈으로바
갈산교회는1926년새벽기도회의붐이일어났는데그흐름은역전도시삽교에교회를설리하는
라보았다.그리고다시1939년효교교회는예배당을건축하였다.
것으로 이어졌다. 갈산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는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의 상당한 재정적 후원을 받
당진읍교회가 세워진 것은 송산면 상거리교회와 같은 해인 1927년경이었다. 1926년 홍성지방
고있었다.1939년김태희목사를초청하여열린부흥회에서는계획하지않았음에도예배당건축
전도대는 서산, 당진 두 구역을 순회 전도하면서 당진읍에 교회를 설립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연보 5,000여 원이 모금되어 5년 뒤에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그 외에도 1930년과 1932
당진읍교회는 1928년 건축헌금을 시작하여 그 결과 1934년에는 당진읍교회의 교회 기지가 감리
년 각각 예배당을 건축한 광천교회와 부평리교회 그리고 1933-34년에 예배당을 신축한 상몽리,
교 재단에 등록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외에 1922년 예배당을 봉헌한 합덕교회, 1923년 예배당
봉림리,팔괘리,또신곡리기도소의모습도발견할수있다.
사택을 건축한 면천교회, 1939년 총공사비 1,300여 원을 들여 예배당을 지은 삼화리교회, 1928
보령군의 대천(궁촌)교회는 1923년 1,500엔을 예산으로 16간짜리 한옥예배당을 건축 중에 있
년 예배당을 봉헌한 고산리교회, 그리고 1932년 설립되어 1933년 12간의 예배당을 봉헌한 기지
었는데,1925년마침내새로운예배당이완공되었음을알리고있다.선교사들은보령구역의수부
시교회가당진군의교회들이었다.
인 대천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면서 이곳이 홍성지방의 또다른 중심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
충남서산군서산면동문리의서산읍교회는1933년27간의함석제대형예배당과주택10여간
다.그러나1933년현재보령구역은대천교회뿐으로입교인수는37명이지만매주30여명의신
을신축하고,이어서1937년에는유치원을신설하여60명의원생들을수용하고있다.1917년세
자가출석하는데그치고있다.
워진 해미교회는 1937년 1,500원의 예산을 들여 회당 개축을 시작, 1939년 완공하였으나 아직
1922년한태유목사의주도로새예배당건축을위해모금을시작한예산교회는1928년에가서야
채무가 많아서 봉헌식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외에 1932년 설립되어 이듬해 예배당을 만든 유
약간의부채를남긴채예배당을완공할수있었다.천안지방감리사김병제목사는1927년부터예
계리교회와 명재운의 열성으로 야학을 꾸준하게 운영하던 오남리교회가 있고, 1927년경 세워진
산에상주하면서구역을담당하고있었는데,그는예산의방직공장여공들을대상으로전도하는등
솔안교회는1928년예배당을봉헌하였다.태안의승언리교회도1932년사택을신축하였다.
예산교회의운영에상당한시간을할애하고있었다.1929년연회록에서예산의몇교회들이문을닫
았다고보고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그해9월예산교회에서열린동화대회에는1,000여명의청중
(2)성결교의확산
이참석하는성황을이루었다.그리고예산구역에는응봉면호화리교회,신례원교회,1928년예배당
을 완공한 예산군 오가면의 양막교회, 예산역전의 강습소가 모체가 되어 설립된 산성리(임하리)교
충남에는 이미 1912년부터 부여의 규암과 강경(1918년)에 강력한 성결교회들이 세워져 있었
회,1931년경세워진송석리교회와1932년예배당을신축한송암리교회가있었다.
다. 그리고 내포의 첫 성결교회는 홍성의 금당리교회이다. 이 교회는 그곳 출신으로 강경에 가서
삽교교회는 1926년 갈산교회의 신자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1932년에는 앨리스 선교사의 회갑을
장사하면서강경교회에출석하던신신근이다시금당리로이사와서전도한결과로7-8명의개종
맞아그기념예배당을삽교에건립하기로결의하고,1933년삽교역전에17간함석지붕의예배당을
자들을기반으로1923년2월시작되었다.그후1년간목회자가없음에도그들은계속그모임을
완공하였다.그런데1930년의삽교교회는사회주의청년들이방해를놓아유일한사역자김인기전
유지하면서가끔씩강경교회이인범목사의방문을받았다.그는산을넘고50마일을걸어서그곳
도부인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912년경 세워진 좌방교회는, 1927년경 일찍이 교역자의 경험
을드나들었다.또그해9월4일부터9일까지원세성목사를청하여거행한부흥회에서는“일반
도있고삽교면장이면서재력가인임명호에의해유지되고있었는데,그교회는벌써1929년에홍성
신자들이 성신의 불 가운데서 말 못할 죄악을 통회자복함으로 큰 은혜를 받는 중 다른 교파의 교
지방회,1931년에는홍성지방주일학교지도자강습회를열고있었다.덕산교회도1923년새건물을
역자와교우수삼인도같이참예하야동일한은혜를받아중생자가40여명이나”되었다.그리고
마련하였다가,1937년에이예배당을다시고쳐서지었다.이교회는1930년박흥서전도사시무당
금당리교회는 1924년 5월 18일 예배당을 헌당하고 아울러 계재우와 이명순이 그 교회의 첫 목회
시에는교회가미약하여어려움을겪고있었다.“1932년새로운신자들이일어나서”설립된고덕
자로임명받았다.
의대천교회는,바로그해예배당건축에들어가1933년완공하였다.이교회는1939년조신일목
삽교(역리)교회는1926년홍성금당리교회의지교회로출발했다.즉삽교로이주한금당리교회
사를청하여부흥회를열었다.효교교회는1926년경제적인상황이매우어려운시절이었음에도불
교인한춘경의전도로약간의가입희망자가생기자자기의집을모임장소로개방하고예배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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