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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효종은 어떻게든지 돌파구를 모색해야 했다. 회담이 열린 것은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회담의 내용은 송시열의 글을 모은『송서습유』권7
「악대설화」
에 실려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날 회담에서 효종은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실은 북벌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
하면서“10년만 준비하면 청나라를 꺾을 수 있으니 협조해 달라”
고 부탁했다.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회담
석상에서 처음으로 북벌을 거론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송시열은“전하의 뜻이 이와 같으시니,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실로 천하 만대의 다행”
이라고 하면서도“만일 차질이 생겨 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어찌하시렵
니까?”
라며 신중론을 피력했다. 군비증강에 대한 협조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송시열이 그렇게 나오는데
도 효종은 집요하게 자기 입장을 개진했다. “하늘이 내게 10년의 기간을 허용해준다면 성패와 관계없이
한번 거사해볼 계획이니, 경은 은밀히 동지들과 의논해보도록 하오.”송시열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신은
결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전하께서 신을 너무 모르시는 겁니다.”
송시열이 강경하다는 것을 확인한 효종은 잠시 화제를 바꾸어 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중에서 무엇이 가장 급선무인지 말해주시오.”그러자 송시열은 마음공부가 가장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수양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송시열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자 효종도
더 이상 북벌을 운운하지 않고 아주 솔직하게 나왔다. “내가 밤낮으로 애써 생각하는 것은 오직 병력을
기르는 일 뿐이오”
라며 군비증강에 대한 협조를 다시 한 번 요청했다. 송시열의 답변은 이랬다.
“먼저 기강을
세운 뒤라야 이 법(군비증강 관련 제도)을 시행할 수 있는데, 기강을 세우는 길은 전하께서 사심을 없애는
데 달려 있습니다.”군비증강에 앞서 사심이나 없애라는 말이었다. 당신이 군비증강을 추진하는 진짜 목적은
북벌이 아니라 왕권강화가 아니냐는 뜻이었다. 이 날 회담은 이렇게 냉소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감됐다. 상호
간의 입장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친 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효종이 북벌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를 근거로 그가 북벌을 추진했다고 해석하는 데는 일정
정도 무리가 따른다. 군비증강에 대한 반발
을 무마할 목적으로 북벌을 거론했다고 해
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 회담이 북벌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회담은 비공개 회담이었다. 게다가 회담
이 열린 날로부터 3개월도 안 된 효종 10년
5월 4일(1659.6.23), 효종은 41세의 나이
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 때문에
병자호란의 주 무대 중 하나였던 남한산성. 사진은 산성의 남문
그는 회담에서 제기한 북벌을 구체적으로
(출처 : 문화재 지리정보 서비스)
실현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더군다나
회담 내용이 공개된 것은 그가 죽은 지 15년 뒤인 현종 15년(1674)이었다. 효종이 살아 있을 때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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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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