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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던 유적이었다. 고지도에서 보면 서산읍성의 북쪽에 있는 주산의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집이 한 채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산봉수이다.
그동안 북산봉수는 오래전부터 부춘산 정상부 체육시설내에 있는 옥녀봉 산신당이 봉수터라고 알려져
왔다. 2006년도에 전망대 시설공사를 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하면서 정확한 봉수터가 확인되었는데, 서광사
뒤편의 해발 198m의 봉화산 정상부에 위치하는 것이 새로이 밝혀졌다. 고지도에서 나오는 지역과 일치
하는 곳이다.
북산봉수의 발굴조사된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되었던 도비산봉수나 고북성산봉수의 구조에 대한
일정부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3)
북산봉수의 발굴조사 된 내용을 토대로 유적의 조성연대나
구조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구는 조선시대 연변봉수의 연대 호와 수혈유구
4기, 그동안의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성벽의 석축시설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연대(烟臺) 호(壕)는 봉수의 가장 중요한 시설이다. 동서로 긴 타원형
으로 호 안쪽에는 석축시설이 있다. 연대 호의 제원은 남북으로
19.28m, 동서로 23.68m, 호는 단면 U자형으로 제원은 폭은
1.65~3.45m, 깊이는 52~103cm이다. 호는 단면 U자형이며, 안쪽면에
방형에 가까운 할석을 1~3단 쌓았다. 할석이 없는 동쪽부분은 연대로
출입하기 위한 가교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의 내부에서는
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기와등이 출토되었다. 수혈유구는 부정
형의 형태를 띠는 형태로 내부에는 석재들이 들어있고, 2호로 명명된
유구에서 부뚜막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성벽시설이 확인되었는데,
트렌치 조사를 통한 조사이므로 유적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은 성벽을 통과하는 부분을 L자로 정지하고
수직의 높이로 성토하고 성토된 흙의 앞쪽에 석재를 수직으로 쌓아올
(고지도 북산봉수 파란부분)
렸다. 성벽은 석축높이 1.6m내외이며, 성토층을 포함한 높이
2~2.5m, 성벽의 폭은 5.9~6.5m이다. 이 성벽은 봉화산, 부춘산, 옥녀봉의 3개 봉우리를 연결하며, 사이의
계곡을 포함하여 잔존둘레 1,558m의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축조연대는 고려후기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봉수관련 부속시설의 추정지역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가 확인되었다.
기와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와가 수습되었다. 이들 봉수유적들은 향후 복원을 통하여 좋은 문화재
교육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본다.
(북산봉수 현황)
(북산봉수 복원도)
03) (財)忠淸文化財硏究 , 2008,
『瑞山 主山烽燧』
의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하였다.
조사를 통해 북산봉수는 1447~1454년 사이에 조성되고, 조선시대 옥천 화산봉수에서 시작하는 제5거 간봉(2)노선의 11번째
연변봉수이다. 북산봉수는 태안의 백화산봉수와 연결되어 서해안 일대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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