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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다 그래서 신문사가 우후죽순처럼 창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때 우리 고장에서도 신문을
제작 발행한 사실이 있었다
. 1949
년 공보처장으로부터 신문 잡지등의 간행권을 얻어 창설한
온양시사 통신사가 조석간으로 신문을 발간하였다
이 신문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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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
때 상당한 기간동안 신문이 전무한 형편으로 전선소식이나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이 모
두 감감하던 때이다 그래서 경제통신사의 양해를 얻어 매일 오전 오후 단파 수신기로 뉴스를
청취 전개하여 타이프로 쳐서 등사하였다 이 신문의 발행인은 이정진이고 편집인에 심승택이
며 총무에 소일영 업무에 로영수가 맡아 관리하였다 전란으로 외부소식에 어두웠던 시절에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주민에게 외부 뉴스를 전달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큰일이 아
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조그마한 신문을 발행한 이들이지만 애향심의 발로에서 이른 사업이니 깊이 기
록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밖에도 온양신보가 발행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온양 타임즈 란 이름의 신문도 발행되었다고 하는데 이두 신문은 전기 온양시
사 통신사에서 발행한 신문의 명칭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1962
3
1
민보를 발간하여 배포하기 시작하였다 발행 회수는 매주
1
1,410 ,
부 처음에는 프린트
판으로 인쇄하였다 내용은 군정소개 지방소식 공지사항 물가시세 등 생활정보 문화기사 유
관기관시책 소개 등을 고루 실어 알찬 지방소식지로 꾸며졌다
편집 진영으로는 발행인 아산군수 심춘택 편집은 내무과장 전주기이며 주필은 박노을로 되
어 있었다 그후
1968
년에는 아산공보라 하며 매월
1
1,000
부씩 발행하였다
. 1978
년도 부
터는 아산소식이라는 이름으로 군정홍보 각종행사 인사동정 향토사 물가동향 유적지 관광
지 소개등 다양하게 제작하여 문화원에서 월 회 발간하였다 그후 온양소식도
1
(1986
년부터 발
행 발간되어 아산소식과 나누어져 각각 발행되었다 이 소식의 특색은 온양 아산의 출향 인
사에게 일일이 발송하여 고향 소식을 전해주고 외지인으로 온양 아산에 연고를 가졌던 인사
에게까지 발송해 주어 훈훈한 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
위 사실들은 신문활동으로서는 그 규모가 영세하다고 논하나 전시에 외부소식을 전해주는
행사라든가 출향 인사에게 고향소식을 전해주는 사업은 어느 신문의 발간정신에 못지 않은 자
랑스러운 애향운동이요 문화활동이었다
온양시의 신문보급 실태
1)
온양시의 신문보급 발전과정
옛날 조선왕조시대에 조보등이 있었다하나 우리고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다만 우리
고장 선비로서 조관이 되어 조정에 출사하여 조보를 받아본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구한말에
이르러 한성순보가 발행되었으나 우리 온양지역에는 정기 독자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조사되
고 있다 한성순보는 서울 중심의 신문이었으나 더러 몇 부씩 시골에 유입된 것에 불과하다
관청에는 우편으로 배달이 되었음을 첨기해 둔다 민족 항쟁기에 이르러 많은 신문이 발행되
었으나 처음에는 지방에 신문보급소가 없어 극소수의 시민이
2 3
일 늦은 신문을 우편으로 구
독하였다 온양에 처음 신문지국이 설치된 것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경성일보가 일본어 신
문으로 경남약국을 경영하던 일본인이 지국을 경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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