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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4)
마을변천과정
가얘 마을과 거미 마을은 본래 신창군 북면의 지역인데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
야리 거산리 덕동 화산리 궁동 각 일부와 소동면의 화달리 일부와 아산군 삼서면의 형
제동 일부를 병합하여 가야와 덕동의 이름을 가덕리라 하여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1921
년 다시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5)
입 향
가얘 마을은 백제 시대부터 무역을 하던 곳이므로 정착하여 사는 주민보다 왕래하는 외부
주민이 많던 곳으로 형성년대는 서기
1400
년경 약
600
년경으로 추측되며 현재 많이 살
고 있는 성씨는 김씨와 최씨로 조사 되었다.
거미 마을은 형성년대는 가얘와 비슷한 서기
1400
년경 약
600
년경으로 추측되며 전형적
인 농촌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옛날에는 이 마을로 모여드는 사람이 많았으나 바다가 사
라지고 무역이 줄어들자 점점 더 인구의 수가 감소하여 외부로 유출되는 인구가 늘어났
다 현재는 오씨와 원씨가 많이 살고 있다
6)
지 명
가얘 마을의 지명
가얘 가이애
가덕리에서 가장 큰 마을
가이 는 갯고랑의 고어이고 애 는 창자라는 뜻
,' '
으로 갯고랑 창자처럼 갯고랑 옆에 있는 마을이란 뜻임.
당곶말 당꼬머리
덜대리 옆에 있는 마을 조수를 이용해 무역하던 중국사람이 살던 불
쑥 삐져나온 마을이란 뜻임.
덜머리
새터말 뒤 너머에 있는 마을 가얘들 아래 머리쪽이 된다 덜머리는 덜머리의
옛말인데 드나드는 첫머리라는 뜻임 옛 조선시대에는 새우젓 배가 많이 들어왔음
새터말
가얘 옆에 새로 된 마을
바깥신원
안신원 바깥쪽에 있는 들
부엉골
새터말 앞에 있는 들 봉이 살던 곳이란 뜻임
안신원
덜머리 앞에 있는들 새로 언을 쌓은 안쪽에 있는 들이란 뜻임
굴샘
생굴 마을 아래에 있는 샘인데 일년내내 마르지 않는 수원이 풍부한 샘
시내기벌
봉골 옆에 있는 기슭인데 옛날에는 기와집이 많았는데 화재와 전염병으로 폐
동이 된 자리라는 전설이 있으며 토취장으로 변했음.
칠성벌
가덕리 오목리 신달 리가 맞닿는 곳으로 옛날부터 애장이 많아 칠성벌이라 불
려왔음.
가야당집
덜머리 옛 당곶에 드나들던 중국사람이나 뱃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백제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덕디방죽
덕디 앞에 있는 방죽
생골
새터 말 위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아래 샘이 있다하여 샘골 또는 생골
거미 마을의 지명
거미
가얘를 건너 서쪽에 있는 마을 금리가 그미로 음이 변한것에 나중에 거미로 변한
것임 또는 뒷산의 모양이 거미처럼 생겨서 거미 또는 그미라 함
덕디
거미 서쪽 뒤 너머에 있는 마을 높은 지대의 평평한 마을이란 뜻으로 생긴 이름
. ' "
덕 은 높다는 뜻이고 디 는 장소라는 말임
" '
그미산
거미 마을 뒷산을 말하는데 마을 이름이 이 산 이름에서 유래 되었음
작은 뒷뫼
뒷산 그미
산 에 비하여 작은 산 현재는 토취장이 되어 전답으로 변하고
있음.
거밋들
거미 앞에 있는 넓은 들
서낭당 고개
거미 뒤에는 덕디로 넘어가는 고개 늙은 참나무가 성화되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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