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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저항운동
民族抵抗運動
갑오농민전쟁
甲午農民戰爭
1.
제 차 농민전쟁
2
19
세기말인
1894
년에 동학교도
東學敎徒
를 비롯해서 농민들의 봉기로 이루어진 갑오농민전쟁
甲午農民
戰爭
은 한국근대민족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갑신
甲申
정변에 이어 두 번째의 커다란 산맥
山脈
이었다
갑오농민전쟁에서는 갑신정변에서와는 전혀 달리 양인신분층
良人身分層
과 천민신분층
賤民身分層
민들이 주체가 되어 밖으로는 외세침략자로부터 나라를 지켜 구하고 안으로는 봉건적
封建的
구체제를
해체하여 새로운 근대사회에의 길을 열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을 일으킨 주체세력으로서의 농민들은 그들의 사상과 신앙에 있어서 동학과 분리
될 수 없는 내용의 관련을 갖고 있었다.
전봉준
全琫準
1894 (
년 고종 년
31 ) 3
21
일 고부군 봉기가 민권투쟁이라면 월의 봉기는 민족자위의
9
일본에 대한 항전이었다.
그해 월 전라도 동학농민군이 전주성
4
全州城
을 점령하였을 때 충청도에서 이에 호응하려 하였으나
북접지도층의 반대로 산발적인 봉기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남북접의 대치는 김방서
金邦瑞
오지영
吳知泳
같은 온건적 인물들의 주선으로 북접의 호응
을 얻게 되어 월
9
18
일 총 궐기령이 내렸으니 이때 북접파에 속한 각지방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면천
沔川
박희인
朴熙寅
홍천
洪川
김두열
金斗悅
한규하
韓圭夏
심상현
沈相賢
당진
唐津
박용
朴容台
김현구
金顯玖
신창
新昌
김경삼
金敬三
옥천
沃川
정원준
鄭元俊
강채서
姜彩西
청주
淸州
권병덕
權秉德
손천민
孫天民
이용구
李容九
전주
全州
서영두
徐永斗
허내원
許乃元
임실
任實
이병춘
李炳春
여산
廬山
최난선
崔鸞善
고덕삼
高德三
부안
扶安
김석윤
金錫允
김락철
金洛喆
옥구
沃溝
장경화
張景化
허진
許鎭
함열
咸悅
김방서
金邦瑞
오지영
吳知泳
안면도
眠島
주병도
朱炳道
태안
泰安
김동두
金東斗
덕산
德山
김배
金培
서산
瑞山
박인호
朴寅浩
木川
김복용
金福用
이희인
李熙人
보은
報恩
김연국
金演國
황하일
黃河一
무주
茂朱
이응백
李應白
고산
高山
박치경
朴致京
만경
萬頃
김공선
金功善
임피
臨陂
진관삼
陳寬三
익산
益山
오경도
吳景道
고제정
高濟貞
일본군은 마침내 월 일 양력 월 일 새벽 시에 준비된 군사작전을 개시하여 조선왕국을 포위해서
6 21 (
7 23 )
4
공격하여 저항하는 왕궁 호위 조선군을 일부 학살하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무력으로 민비 정권을 붕괴시
키고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을 섭정으로 온건 개혁파의 김홍집 내각의 수립을 지원하였다 일본군은 또
한 이와 동시에 아산만에 정박해 있는 청국 군함을 선제 공격하여 청일 전쟁을 도발한 다음 이틀후에
선전 포고를 하여 남의 나라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키었다 일본군은 아산에 상륙해 온 청국 육군을 성환
에서 패배시켰다 음력 월 양력 월 에는 증파된 청국 육군이 평양에서 일본군과 교전했으나 역시 불리
8 (
9 )
하여 후퇴하였다 이에 조선은 완전히 일본군 무력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청일전쟁은 압록강 건너 만
주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동학 농민군은 그 사이에 전라도 일대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이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의 농민통
치를 단행하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으나 이제 일본군이 조선의 전국토를 유린하고 내정 간섭을 자
행하며 청일 전쟁의 전세가 일본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고 사태를 더 이상 관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편저 박상건
唐津文化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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