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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고종11년(1874)의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부인은 해주오씨로 오경필(吳慶弼)의 딸이다. 조긍환은
규택(圭澤)과 규익(圭益) 등 아들 둘을 두었다. 조규택은 3남을 두었으며 인주 공세리와 도흥리 일대
에 후손들이 거주한다. 3남1녀를 둔 조규익은 선장면 선창리 큰선장에 와서 훈도(아마도 서당 훈장일
듯함)를 하게 되어 선장 일대에도 후손들이 퍼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부는 천안 쪽으로 가기도 했다.
조병심은 인주 공세리에 살았으나 묘는 선대가 살았던 경기도 여주에 모셨으며 후손들은 인주와 선
장 일대에 묘가 있다.
[135] 양주조씨 조영리
| 趙榮履
<1731년(영조7년)~1768년(영조44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양주조씨(楊洲趙氏) 16세이고 문강공파(文剛公派) 아산시 지역, 영인면 신봉리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창성도호부사 겸 청북(淸北)좌방어사(左防禦使)를 지낸 조태겸(趙泰謙)이다. 아버지는 전
라도(全羅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조국빈(趙國彬)이다.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도사(都事) 윤정미의 딸이다.
조영리는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며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이고 이항태(李恒泰)의 딸이다. 묘
는 영인면 신봉리에 있다. 음력 10월13일에 제사를 지낸다.
한편, 조영리가 신봉리 섭골에 들어와 자리 잡은 뒤에 같은 집안인 양주조씨 18세 조택진(趙宅鎭,
1749~1802)이 들어왔다. 조택진의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조한달(趙漢達)이며 어머니는 예안이씨
(禮安李氏)이고 군수를 지낸 이도병(李道柄)의 딸이다.
조택진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와 선전관 등을 하였다. 부인은 덕수이씨(德水李氏)와 달성 서씨(達
城徐氏)이다. 그의 묘는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에 있고 부인의 묘는 둔포면 봉재리(오리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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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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