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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서 탄생하여 1943년 2월 24일 서울 종로구 봉의동에서 타계. 7세 때부터 부
친에게 판소리를 공부 했고 13세에 이르러 다소 향방을 알게 되었는데 그 후 이날
치의 문하에서 1년간 지도를 받아 자리가 잡혔다 한다. 한 말 고종 때의 5대 명창
의 1인 자로 인품이 뛰어난 국창으로 유명하였다고 전해온다. 52세 떼에 상경하여
연흥사 창립에 공헌하였으며 홍성 갈산의 춤의 대가 한성준과도 같이 조선 성악연
구회에 참가하여 후진 지도에 힘썼다고도 한다. 장기는 “적벽가” 또는 “심청가” 중
꽂 타령이라 한다. 또한 농부가를 애창하여 많은 노동요를 전승하였다고 전하여온
다. 결성 용호리 장 폐장 무렵 1925년에 형 영수씨와 같이 서울 마포로 이사 후
에, 참봉벼슬 제수하였다고 하며 결성지방의 제자로는 읍내리 김주경, 이철진, 유
장송, 금곡 김증실, 최유선, 형산 김연식, 김영돈 씨 등이다.
⑤ 한말의 고수 겸 명창 김시준(金時俊)
김창용 명창과 강선명의 장남으로 1894년 3월 6일 결성에서 출생 1943년 7월
7일 서울 영등포에서 타계, 어려서부터 부친의 사사로 명창이 되어 부자간에 공연
시는 아버지는 소리하고 아들은 고수로 활동하였고 아버지의 소리에 맞추어 “좋~
타 얼~시구 절~시구” 등 흥나는 추임새 소리 등 감탄사를 수차 반복하여 외친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⑥ 일제 해방 시 명가수 김채돈(金采敦) 예명 선초
김시준과 진용분의 장녀로 1924년 1월 28일 결성에서 출생하여 마포로 이사 후
에 어려서부터 부친의 사사로 일제 강점기에 명창에서 가수(歌手)로 서울에서 많은
활동 하다가 80년대에 일본에 건너가서 양악에 종사하며 현재는 음악학원을 운영
하고 있다 한다.
위의 고조부 김성옥과 증조부 정근 그리고 조부 창용 또한 부친 시준과 본인 채
돈 등으로 오대(五代). 명창(名唱) 가문(家門)이라 칭하여 온다.
따라서 이 지방 출신 특수명창 김창용과 최선달 국창의 기량과 업적을 널리 알
리고 판소리의 중고제(中高制) 시원지에 그 정신을 기리는 우선 두 기념비 건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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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토문화(洪州鄕土文化)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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