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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참봉이 되고 봉사 직장에 승진하여 주부를 거쳐 고산현감에 제수되었다.
만기가 되자 주부에 들어가고 대흥현감에 나아가 있다가 중종 병술년에 관아에
서별세했다.
공의천성이간고하고청렴하고결백하여형제간에나눌물품이있으면반드
시퇴연이많고적음에뜻이없었다.매양나누어공물에붙일때의례히여유가
있게 하고 희롱하는 말에는“말 아니하는 나머지라.”라고 하였으니 구차하게 얻
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이와 같았다. 형제간에 우애가 출천하여 행실이 정직
하고 신의가 있으며 고을의 수령이 되어서는 백성을 사랑하고 구휼하며 번다하
고가혹한정치를하지않았다.당대중종반정에원종공신에참여하였다.
참판황효헌찬략(參判黃孝獻撰略)
인용:『광산김씨유적보감』상권389쪽上
◆이겸인묘비
소재지:예산군대술면시산리(당초는신암면종경리에있었음)
시 대:조선(1515년)
단성현감 이겸인 묘비는 기묘명현의 한분인 자암 김구가 212개의 해서체 글
자로글을써서1515년예산현종경리,현재의충남예산군신암면종경리에세
운것이다.김구는이겸인의외손자로이겸인의사위인김계문의아들이다.
◆이겸인묘비문
공의 휘는 겸인이고 자는 수옹으로 전의인
이며 고려태사 도의 후손이다. 증조의 휘는 언
재로 중현대부 내부령이고 조의 휘는 선경으
로 정용위랑장이며 고의 휘는 양성으로 통정대
부 길주목사이다. 목사공이 판사 장원도의 딸
과혼인하여임진(1412년태종1)에공을 낳으
셨다. 공은 사마시에 급제 하였으며 관직은 현
감에 이르렀다. 지내온 곳 마다[역임한 여러 고
을에서] 명성과 공적이 있었으며 병신(1476년
6장묘비│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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