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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爾重), 이숙(爾
), 이소(爾昭), 이병(爾炳), 이한(爾翰) 등 6남 2녀를 두어 모두 학문과 효행, 관직
등에서 집안의 이름을 알렸다.
-조계신의 묘-
- 현손 조이후의 묘-
[134] 창녕조씨 조병심
| 曺秉心
<1815년(순조15년)~1897년(광무1년)>
조선 말기의 학자로 창녕조씨(昌寧曺氏) 40세이며 창녕부원군파 아산시 지역, 인주면 공세리 지역
입향조이다. 현재 선장면 선창리에 거주하는 44세(世) 조영필(曺永弼, 74세)씨의 고조부이다. 선대
는 오랜 동안 천안 병천에 거주해왔으며 경기도 여주에서 몇 대를 이어오다 공세리로 들어오게 되었
다. 대략 150년 전의 일로 본다.
조병심의 고조는 영조 때 생진과에 급제하고 산청현감, 진주진관병마절제도위 등을 지낸 통훈대부
조윤적(曺允迪)이고 증조는 정조 때 생원시에 급제한 뒤 목사와 도정(都正)에 오른 통훈대부 조휘진
振)이며 조부는 조석연(曺錫衍)이다. 아버지는 조억승(曺億承, 1792~1848)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 남건심(南建心)의 딸과 전주이씨 이종기(李鍾基)의 딸인데 누가 생모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1남1녀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완일(完逸)이다. 부인은 용인이씨로 주부(主簿) 이재양(李在
陽)의 딸이다. 집안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훈도(訓導)를 하기 위해 공세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조병심은 자녀가 없어서 먼 친척(생부 曺秉華)에게서 긍환(肯煥, 1841~?)을 계자로 들였다. 조긍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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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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