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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고득조 씨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중선을 타지 못 하게 되자, 샘고랑 앞에 주벅을 맸다.
밴댕이나 멸치 같은 잡고기도 들고 갑오징어나 대하가 들기도 하였다. 잡은 고기 중에서 상
품가치가 있는 것은 어머니가 이고 시장에 가서 팔고, 이른 봄에 잡히는 실치는 김장처럼 떠
서팔았으며,나머지는모두자갈밭에말려사료로팔았다.
주벅은 길이 20m쯤 되는, 굵고 긴 나무기둥을 세우고 긴 자루 같은 그물을 매다는 것
이다.
주벅은 밀물 주벅과 썰물 주벅이 있는데 가숭구지에 있던 주벅은 모두 썰물 주벅이었다.
즉썰물때고기를잡을수있도록설치하였다.주벅은가숭구지에군인들이들어와울타리
를 치면서 그만두었다. 당시 어족자원이 고갈되어 고기도 잘 잡히지 않았고 군인들 때문에
출입하기도어려워주벅을그만두었다.정부에서보상같은것은없었다.
영보리 가숭구지와 육도, 월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주민들이 친하게 지냈다. 육도나
월도 주민들은 주벅으로 잡은 고기를 팔기 위해서 가숭구지에 배를 댔기 때문이다. 육도와
월도는 물도 귀해 가숭구지의 샘골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샘골 앞에는 배를 대기도 좋
고, 샘과 해안이 가까워 물을 운반하기도 좋았다. 옛날에는 물담을 그릇도 없어 배의 간에
다 직접 물을 싣고 가기도 했다. 섬에서는 지붕을 해일기 위해 볏짚도 필요했고, 연료로 나
무도 필요했다. 볏짚은 영보리에서 나무는 오포리에서 가져갔다. 그러므로 육도나 월도와
가장가까운마을은영보리가숭구지,다음은오포리였다
가숭구지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김발을 맸다. 한 집에서 10떼~20떼를 맸는데, 1떼는
대나무 100쪽을 엮은 것이다. 김의 품질이 좋고 수확량도 많아 많은 소득을 올렸으나 어장
면허를받아양식장을한것이아니기때문에보령화력이들어설때많은보상을받지는못
했다.
김의포자는춘분사리에붙인다.엮은대나무발을바다에펼쳐놓으면포자가붙은것이
다. 가숭구지 마을 앞은 파도가 세어 김양식을 하기는 어렵지만 포자는 잘 붙었기 때문에
마을 앞바다에서 포자를 붙였다. 수확은 음력 10월부터 하였다. 바구니와 가위를 가지고
가서김을잘라왔는데,대바구니에약20㎏을뜯어오면1동(1000장) 정도를만들수있었다.
김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바닷물로 깨끗이 씻었다. 바닷물로 씻은 뒤에는 샘물로 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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