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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보령시??
고득조 씨는 1944년 오천면 영보리 가숭구지에서
보령의?바다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이고 고조할아버지가 가숭구지
가숭구지
에 들어와 후손이 퍼졌고 가숭구지에서 가장 많은 성
마을의옛생활
씨로 살았다. 모두 30가구일 때 10여 가구가 제주 고
씨였고,가숭구지에가장먼저들어왔다고전한다.
가숭구지에는 논이 거의 없어 주민들은 대부분 순
수어업을하고살았다.옛날에는청어를,청어가없어
진 뒤에는 잡고기를 주벅으로 잡거나 배를 가지고 어
업을 하면서 살았다. 고득조 씨의 고조할아버지도 영
보리 가숭구지에 들어와 청어를 잡았다고 전해온다.
마을 남쪽, 샘고랑 앞에 청어 주벅을 매어 많은 청어
고 득 조(1944년생)?
를 잡았는데 이 청어를 보관하기 위해 샘고랑에 굴껍
보령시?오천면?영보리
질로회다짐을하여냉동창고를만들었다.
아버지는 남의 중선배에서 사공으로 일했다. 사공
은배의책임자로오늘날선장이다.조기와갈치,새우
등을 잡았는데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 다니면서 고기
를 잡았다. 칠산바다도 가고 연평도도 갔다. 한 번 나
가면 보름도 한 달도 있다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소금
에 절인 고기를 머리에 이고 주포장이나 청소장, 또는
집집마다다니면서팔아짭짤한소득을올렸다.
돛을 단 중선배는 안강망을 싣고 다니면서 작업하
였다. 무거운 그물이나 닻을 오르내리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들었고 8명 정도가 타고 다녔다. 선
장은 사공으로 불렸고, 부선장은 부사공, 배의 앞에서
일하는 이물사공, 밥을 하는 화장, 일반선원 4명이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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