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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하며 구체적인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창원공씨(昌原孔氏)로 중랑장 공백(孔伯)의
딸이다.
정수는 아버지가 순절한 뒤 온양으로 내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600여 년 전의 일이다. 묘는 신인
동 전의실에 있다. 부인은 청주경씨(淸州慶氏)이며 숭무(崇武)를 계자로 들였다. 정숭무는 계공랑으
로 도사(都事)를 지냈으며 부인 창원황씨(昌原黃氏) 사이에 한수(漢壽), 한근(漢謹), 한계(漢桂) 등 세
아들을 두어 후손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충근(鄭忠根)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온양정씨 14세이며 소윤공파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에 낙향
한 인물이다. 소윤공(少尹公) 정순우(鄭淳祐)의 증손이고 판선공감사 정득량(鄭得良)의 손자이다. 아
버지는 고성군사(高城郡事)를 지낸 정포(鄭袍)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소윤 권추(權錘)
의 딸이다.
충근(忠根), 충본(忠
), 충기(忠基), 충간(忠幹) 등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관직이 이조정랑
에 올랐으므로‘정랑공’
으로 칭하며 정랑공파의 파조가 된다. 그가 어떤 이유로 월선리에 들어와 자
리 잡았는지 구체적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시기는 대략 550년 전의 일로 추정한다.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로 도사 한암(韓巖)의 딸이다. 석(錫), 종(鍾), 건(鍵) 등 세 아들을 두었으
며 정석은 의종(義宗)과 예종(禮宗)을 낳았으니 이들이 진사공파와 수사공파의 파조가 된다. 정종은
인조(仁祖)와 순조(純祖)를 두어 이들 또한 금위공파와 통정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정충근의 묘소는
영인면 월선리 선영에 있다. 현재 아산시 일대와 천안시 지역에 정랑공 정충근의 후손이 주로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태안과 서울 일대에도 많이 살고 있다.
-온양정씨 재실-
- 정충근의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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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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