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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성낙붕
成樂朋
<1881. 11. 19 ~ 1919. 4. 5>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 유공자이다. 도고면 석당리 출신이며 1919년 4월 4일 홍성군 홍동면에서 횃불 만
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밤 홍성면을 비롯하여 홍북면(洪北面)·금마면(金馬面)·홍동면(洪東面)·구
항면(龜項面)내의 24개 촌락에서, 일제히 횃불을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횃불시
위에 놀란 일본 수비대가 시위군중을 동서로 포위하여 가한 무차별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했다. 정부에
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 성낙응
成樂鷹
<1914. 5. 25 ~ 2001. 9. 7>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 유공자다. 도고면 시전리 출신인 그는 1932년 보성고보(普成高普)에 재학 중 조
상환(趙相煥)·유동태(柳東泰)·서승석(徐升錫)·신대성(申大成) 등과 함께 비밀결사 반제국주의동맹반
(反帝國主義同盟班)을 결성했다. 이 단체는 노동·농민운동과 연대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새로
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독서회 형태의 사회주의계 학생 비밀결사였다. 그들은 비밀리
에 무산자 정치 교육과정을 설립하고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까지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
였다.
[21] 성달영
成達永
<1873. 6. 15 ~ 1933. 11. 30>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 유공자이다. 도고면 석
당리 사람으로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우계 성
혼(成渾)의 12세손이며 자는 경백(景伯), 호는
비파헌(琵琶軒)이다. 일찍이 을사늑약(乙巳勒約
에 통분하여 민종식(閔宗植) 의병에 가담해서
1906년의 홍주성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의병이
패한 뒤 김재정(金在貞)의 집에 은거하며 재기
를 준비했다. 1910년에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
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에 1917년에 아우 성문
영(成文永)이 있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수합 및 친일 부호 처단에 참
여·활동했다.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뒤에
<성달영의 묘>
대한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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