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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 그러나 이 실패는 꼭 옥균 혹은 독립당을 책하는 것은
는데 지나지 않았다
. 도리어 그 실패의 책임은 우리 정부 당국자에 있는 것이다.
아니다
(伊藤), 정상(井上)으로 하여금 한국의 형세를 확실히 파악, 대한
만일 이등
, 후등(後藤), 복택(福澤)등의 계획을 원조하여 이에
정책의 방침을 확정하여
총기와 자금 양식으로 하고 독립당과 함께 개혁의 대사를 맡도록 하였을 것
이다
. 그러나 그들은 후등(後
그 결과 물리칠 수 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등의 계획을 우습게 여기고 죽첨(竹添)공사에 임하는데 이 대사를 가지
. 그 사려천박, 계획경홀, 마치 어린이
고 혼자 그 공을 차지하고자 하였다
장난 같았다
우리가 그 죄를 독립당에 전가 옥균을 경시 청국을 두려워하고 사대당에
아참 그를 학대하는 것 같은 일은 필경 그 실패를 감추고자 하는데 불과하
. 요컨대 옥균의 실패는 옥균의 실패가 아니고 우리 정부의 실패다. 정부
, 더구나 그 계획 소홀하고 그 인물 대사를 맡길
에 일정한 방침 정책 없고
. 이 모두가 정부의 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수 없다
. 17년 이래 청국의 속방정책 착착 진척을 보고 독립당은 일망타진되
보라
. 이로부터 약 10년간 조
어 제국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일 얼마나 되는가
(袁世凱)의 손에 떨어져 조선으로
선의 실권은 거의 다 청국 주재관 원세개
하여금 청국의 속방이 되게 하였다
, 정책 없음에
우리나라가 아무 대항도 못하는 것은 그 원인 일정한 방침
. 그리고 옥균의 큰 꿈도 공허히 호기를 놓치고 그 경론 화병에 돌아갔
있다
다 하여도 그가 대사에 임하여 조국에 봉사코자 하는 일편의 기백은 연연히
빛날 것이다
17년 경성의 변이 우리나라에 달하자 외무서기관 율야신일랑(栗
생각건대
) 즉일 인천으로 향하고 참사원 의관 정상의차(井上毅次) 다음에
野愼一郞
. 24일 정상(井上) 외무경 특파전권대사가 되어 육군중장 고
인천에 도착했다
(高島革內之助) 해군중장 화산자기(樺山資紀) 등과 같이 살마환
도혁내지조
(薩摩丸 : 싸스마마루)에 승선 호위의 육해군을 이끌고 30일 오후 인천에 도
1월 3일 경성에 입성함. 청국 역시 그 관계의 지대함을 알고 흠차오대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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