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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다팔았으나김호준씨의아내는갯일을할줄몰랐다.
한편, 종갓집인 재종조할아버지 후손으로 양자 간 동생의 형편이 어려워 동생의 양어머
니까지 모셨다. 5년간 함께 살다 돌아가셔서 장사지냈다. 김호준 씨 부부는 남포 삼현리에
서여러번초상을치렀다.
남포1차간척지가완공된후분양이시작되었다.청소면성연리에저수지를만들면서수
몰된 단작굴 사람들에게 우선 분양권이 주어졌고 나머지는 입찰을 했는데, 좋은 논은 경쟁
이 셌다. 김호준 씨는 좋은 논에 입찰하였다가 떨어져 분양받지 못했다. 당시 외지에서 온
돈많은사람들이주로분양을받았다.
남포 1차 간척지를 분양한 후에는 남의 논 2배미(1800평)를 소작하였다. 수확량의 1/2를
지주한테주었기때문에이득이나지않았다.
김호준 씨는 계속해서 학교 보수공사 등 건설현장에서 일해 돈을 모았고, 부인은 채소장
사와 함께 소를 길러 돈을 모아 구간사지(1차간척지) 1다랭이(900평)를 샀다. 이후 2차 간척지
1500평을 분양받아 농사지었다. 삼현리에서는 소를 빌려다 논을 갈면 품삯 2일분을 주었
고,사람이함께갈아주면3일분의품삯을주어야했다.소가1일일하면논2다랭이(1800평)
를갈수있었다.
한편, 유근찬 국회의원이 마을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때 김화식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신청하는 데 도움 줄 것을 부탁하면서 보관하고 있던 문서를 복사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
연락도 없었다. 김화식 선생은 이미 1995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나 후손을
찾지 못해 전달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훈장이 전달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쉽다. 2020년에 김화식 선생의 훈장(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받을 수 있었던
것은당질인김범식의노력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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