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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박인우는 고려 말 이성계의 혁명에 반대해 예산 덕방산 자락에
같이 인성과 물성은 같다고 보는 낙론(洛論)을 주장하였고, 윤봉구는 남당 한원진(南塘 韓
元震)과 같이 인성과 물성은 다르다는 호론(湖論)을 주장하였다.
은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친우인 이성계가 병조판서로 세 번이나 불렀지만 나아가
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신숙서는 예산 세거 평산신씨의 입향조로서 계유정난 때 홍주목 면
셋째는 무실(務實)학풍이다. 예산의 유교 학맥으로 보면 우계 성혼(牛溪 成渾)의 학문과
천으로 유배되었고, 그 후 수차에 걸쳐 관직을 권유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덕풍현 고현내
정신을 계승해 온 우계학파(牛溪學派)가 융성한 편이다. 조익은 이정구, 윤근수의 문인인
면 대지동에 은거 절의를 지켰다. 또 이약수는 김굉필의 문인으로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이
데, 이정구는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배웠다. 조익은 이시백, 최명길, 장유와 더불어 세칭 ‘사
죽고 유배당하자 성균관 유생 150여 명과 함께 상소를 올려 항의하고, 마침내 투옥, 평해,
우(四友)’로 불리는데, 우리나라 초기 양명학자로 분류된다. 조익은 성리학에서 벗어나 경
예산 대흥으로 유배 중 46세의 나이로 죽었다. 김구 또한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개혁에
(敬)을 중심으로 심학적 색채를 보여주고 있고, 성리의 사변적인 논변보다 내면적인 수양과
앞장서다 남해, 임피 등으로 유배되었다가 47세에 세상을 떴다. 이담은 김굉필의 문인으로
실천을 강조하였다. 또 박학풍을 견지하고 자주적 학문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명준은 이제
을사사화 때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의리정신의 발휘는 한말 서세 동점기에도 유감없이 발
신의 손자로 부친이 이정구, 이항복, 성혼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특히 예산 유학을 대표하는
휘되었다. 최익현은 이항로의 문인으로 위정척사에 앞장서고 일제의 침탈에 맞서 의병 투쟁
조극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조극선은 이명준, 박지계, 조익을 존경 흠모하고 그들의 문하
을 하다 투옥되고 마침내 일본 대마도에 끌려가 그곳에서 순국했으며, 이남규는 한말 위정
에서 수업하였다. 조극선은 효자로서 이름나 ‘효교’라는 다리가 불리어졌고 이로 인해 효교
척사에 앞장서고 항일 투쟁을 하다 서거하였다. 이러한 예산의 의리정신은 일제 강점기 민
리가 생겼다. 그는 『소학』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아 기초 윤리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그는 우
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윤봉길 의사로 이어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계, 율곡의 무실학풍을 계승하여 실심의 확립과 실공, 실천에 주력하였다.
둘째는 성리학풍이다. 조선 유교학풍의 주류가 성리학이었다고 볼 때 예산의 유교학풍
넷째는 실학풍이다. 예산은 조선 실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의 형제, 후손들이 살면서 성호
또한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16세기 퇴계, 율곡의 시대가 조선 성리학의 전성기였다면, 17
의 실학정신을 이어갔던 곳이다. 이익의 숙부인 이명진이 세거한 이후 덕산 지역에 정착한
세기는 시대 변화와 함께 학문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8세기에 와서는 인간 심성
여주이씨는 성호실학을 가학으로 삼아 발전시켰는데, 그 중심 인물은 이서, 이익, 이용휴,
의 내면 구조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인성과 물성의 비교적 이해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이병휴, 이가환, 이삼환 등이다.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서 벌어진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 내지 호락(湖洛) 논쟁은 한
또한 다산 정약용이 금정찰방으로 재임하던 때 이삼환이 주도한 서암강학회의 활약도 주
말까지 이어졌다. 이 논쟁은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이 같으냐 다르냐 하는 것으로 인간
목할 만하다. 1795년(정조 19) 10월 24일부터 10여 일간 온양 서암의 봉곡사에 모여 성호
과 사물과의 관계와 위상 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본성이 개나 소 같은 다른 동
의 유서를 교정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삼환의 주도로 상호 질문하고 토론하며 학문과 도리를
물과 같다고 보는 경우와 어떻게 인간의 본성이 동물과 같을 수 있는가 하는 데 논쟁의 초점
강마했다 한다. 이때 모인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덕산의 이삼환, 이명환, 이재위, 박효긍, 예
이 있었다. 같다고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개미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산의 심로, 온양의 강이오, 서산의 이유석, 공주의 오국진, 정약용, 강이인, 강이중 등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고귀한 존재로 인간과 대등한 존재 의미를 갖게 된다. 이에
이는 일종의 성호문도들의 학술 연찬모임이며 성호의 실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모임의
반해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존엄한 존재이며, 특히 지성과 덕성의 측면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에서 다른 동식물과 현격하게 차별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이 같
덕산의 성호 가학의 학풍은 자득과 실천을 강조한 성호의 학문 정신과 방법론을 계승한
다고 보는 것은 리(理)의 보편성에 근거하는 것이고, 다르다고 보는 것은 기(氣)의 차별성에
것이다. 이익은 ‘초학자를 가르치는 방법은 먼저 그 구두를 바르게 떼도록 해야 한다.’ 하고,
근거한 입론이다. 그런데 예산의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은 현상벽과 윤봉구라고 할 수 있
규식을 만들어 「구두지남」이라 이름 짓고 학생들로 하여금 참고하여 글을 읽게 하였다. 이
다. 이들은 모두 권상하의 문하에서 공부한 제자들인데, 현상벽은 외암 이간(巍巖 李柬)과
삼환도 글을 가르칠 때 반드시 먼저 글의 이치를 열어 보여서 스스로 이를 터득하도록 지도
3.선비의고장,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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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의뿌리예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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