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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 한병은 이응전 궁 뒤에서 발포하였다.
가와 발포하니
, 왕비, 세자, 세자비 등, 몰래 궁문을 나와 북묘에 이루어 청
이때 대왕비
. 남은 것은 국왕 하나 뿐, 옥균은 청병의 폭거를 분
병의 보호하에 들어갔다
, 오직 일병을 치
노 달려가 질타하였지만 그들은 ?궁중을 치는 것이 아니고
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옥균이 사라지다 즉시 발포하여서 총탄 궁중에 날아들어가 폭발하였다
, 대왕비, 왕비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을 요구, 시종의 간언을
국왕 크게 놀래
. 옥균 및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의 무리 이에 따르다. 죽첨(竹
듣지 않는다
)공사 역시 이에 수행하였지만 아주 주저하는 빛이 역역하였다. 북문에
이르자 옥균 다시 인천으로 피할 것을 상주하였지만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
. 여기에 이르러 죽첨(竹添)공사 드디어 안색이 변하여 고별을 말하고, 탈
. 이에 이르자 옥균 ?대사는 결정되었음?이라며
출하여 돌아가고자 하였다
. 왕 말하기를, ?그대 어느 땅으로 갈 것
국왕의 앞에 부복 고별을 고하였다
?? 옥균 대답하여 말하기를 ?대사 여기에 이르러 국가를 위해 진력할
인가
, 신은 지금부터 일본에 가 수년래의 은혜에 배반하지 않고 군국
것을 기약
(임금얼굴)을 우르러
을 위해 죽음을 다할 것이며 청천백일하에 다시 천안
. 여기에서 옥균은 박영효
뵙고자 합니다?고 군신이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
(竹添)공사를 따라 우리 공사관에 도착하였다. 청한의 병력
등과 같이 죽첨
, 드디어 공
도중에 차단 폭도 봉기하여 이에 합세 우리 거루민을 살상하여
. 공사관 안에 파수병은 적고 양식은 바닥이 났다.
사관을 포위하였다
. 7일 오후 포위를 탈출하여 인천으로 향하였다. 돌이
오래 버틸 수는 없다
. 일행은 도중 가
켜 보건데 우리 공사관은 횃불 하나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8일 저녁때 천신만고 인천에 도착 겨우 배에 오를
끔 적의 내습을 받았지만
. 이변으로 기림(磯林)대위를 비롯 우리 장병의 전사자가 적지 않
수 있었다
았다
(바) 독립당 실패의 원인
(竹添)공사와 계획하여 단행한 개혁의 거사는 이리하여 실
김옥균이 죽첨
패로 돌아가 도리어 조선으로 하여금 청국에 복종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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