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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 왕, 즉각 친서를 박영효에게 내려
본병으로 궁궐을 호위토록 의론 하였다
(竹添) 공사 병력을 이끌고 입궐했다. 이미 궁중은 독립당으로 충만하고
죽첨
. 군신들은 변고를 듣고 용
모든 문은 모두 일본병력에 의해 경계가 되었다
. 김, 박, 서(재필)의 명찰을 가
안을 배알코자 궁문에 이르자 위병 이를 제지
진 자 이외는 들여보내지 않고 사대당의 대관이 도착하면 양에 들여보내 모
. 민영직, 조영하, 민태호등 잇달아 내전에 쓰러졌다. 이조연, 한규
두 베었다
, 윤태준의 3인은 이미 입궐하여 궁중에 있었기에 이를 벨 이유가 없자,
옥균은 이 세 사람을 재촉하여 빨리 밖으로 나가 병력을 이끌고 와 경계를
. 그들이 제1문에 이루자 전후 협격하여 이들은 쓰러뜨렸다.
맡도록 하였다
이날 밤 옥균이 제거하고자 한 자들은 대부분 쓰러뜨리고 아직 주청하지
. 이때, 왕비를 비롯 궁녀들 대궐로 돌아가기
않았고 세간은 몹시 소연하였다
. 玉均 즉시 병사들로 하여금 궁중에서 제일 세력이 있
를 무척 주장하였다
(長柳花賢)을 결박지어 오게 하였다. 편전 가까운 복도에
는 궁관의 장유화현
, 선혈이 튀어 특히 어의를
끌어다 꿇어 앉혀 그 죄상을 선고하고 이를 베니
. 만좌실색 숙연하여 말이 없고 환궁을 말하는 자 없다. 참
더럽힐뿐 이었다
(斬奸)의 거사 일단 끝나고 정부의 실권이 전부 독립당에 속하자 관리를
, 문벌을 폐지, 조세를 개점, 관내성을 신설하여 궁중, 부중을 별도로 세
경질
, 그 상황이 마치 우리 유신의 당초 막병을 조우복견(鳥羽伏見)에서
우는 등
(京都)에서 나오듯이 독립당의 세력 융창하여 천지
깨치고 점령이 즉각 경도
를 진동하는 상황이였다
(마) 청병의 내습과 개혁의 실패
12월 6일 김옥균 글을 청국 주재관 원세개(袁世凱)에 보내어 어제밤 청
. 그
병의 공문에서 비례 개문을 요구한 것을 책 했지만 답서는 오지 않았다
600을 이끌고 국왕에 알현을 요구해 왔다. 옥균 대답하기를
는 도리어 병사
항시 호위병이외는 대검을 허락하지 않는다
1개 중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궁중에
이때 우리 병력이 경성에 있는 것은
, 도리어 청병에게 의뢰할 기미를 보였다. 오후
서는 이를 몹시 불안이 여겨
2시 원세개(袁世凱) 상서를 국왕에게 올리며 동시에 병력을 갖고 대궐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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