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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으로 일시 파직되었다. 1705년에는 도승지가 되었으며, 그 뒤 동지의금부사(同
知義禁府事)·안동부사(安東府使)·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특히
서예에 능통하여 통도사사리탑비(通度寺舍利塔碑)등의 비문(碑文)을 썼다.
비석의 건립 연대는 비문(碑文)에 보이는 강희(康熙) 37년으로 보아 조선 숙종 24
년(1698)으로 추정된다.
6) 장차주(張次周) 불망비(不忘碑)
장차주는 조선조에서 활약한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문재(文哉), 본관은
인동(仁同). 1644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을
거쳐 예조좌랑(禮曹左郞)·정언(正言)에 올랐다. 이 후 2년간 관직(官職)을 떠났다가
황해도사·해운판관(海運判官)을 역임하였다. 홍문관(弘文官)의 수찬(修撰)이 되어
「인조실록(仁祖實錄)」
의 편찬(編纂)에 참여하였으며, 경연(經筵)의 검토관(檢討官)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651년에 당직 근무중 병을 얻어 죽었다.
비문(碑文)에 보이는 순치(順治)는 청(淸)나라 세조(世祖)의 연호(年號)로 순치(順
治) 6년은 조선 인조 27년(1649)에 해당된다.
7) 한진기(韓震琦) 선정비(善政碑)
삼도해운판관(三道海運判官) 한진기의 선정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다. 비석은
현재 곶창지(串倉址) 앞에 세워져 있는데, 비좌(碑座)는 알 수 없지만 높이 41cm, 너
비 52cm의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문(碑文)에 보이는 순치(順治) 청나라 세조의 연호로 순치 10년은 조선 효종 4
년(1653)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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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아산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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