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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내가 이에 자리를 피해 위문을 하면서 말하되 “지금 학문하는
사대부들이 옛것을 돈독히 배우고 글도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데 그대 어찌 버리고 이에 막중한 비문을 거의 죽어가는 늙은이에게
부탁하는가?
이 늙은이 일찍 선대부께서 서쪽 변방으로 귀양 갈 때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마는 나의 미천한 나이가 어느 지경인가? 정신이
쇠망해 흩어짐을 견줄 데 없으니 어찌 능히 문자의 일에 스스로 힘
쓸 수 있겠으며 더구나 선대부의 썩지 않는 사업이 어찌 다른 사람
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하였으나 진사군은 고집을 마지않고 자주
왕래하며 예의를 갖추고 또한 가장을 두고 간 지가 이제 3년이나 되
었다.
내가 그 정성의 지극함에 감동해서 시험 삼아 그 가장을 열람하고
읽으니 공은 세상에서 일컫는 우리 나라의 태백이라 할 수 있는 양
녕대군의 7세손이다. 두 번 전해서 호산군 소평공 휘 현은 성묘조의
좌리공신이다. 휘 영남은 진안부정이고 휘 희년은 봉사이고 휘 세량
은 증참판으로 완흥군이고 휘 목은 참의로 증참찬 환영군이다.
소평공의 장자 휘 수남은 보안부정이고 휘 희손은 문과 첨추로 아
들이 없어 완흥군을 취해서 후사를 삼았으니 이가 공의 고조 증조
조부와 아버지가 된다. 양녕의 후손이 대대로 인물이 있었으나 공에
이르러 더욱 명성이 있었다. 공의 사람됨은 가늘고 야위었지만 정채
가 사람에게 쏘았으며 동자 때로부터 말을 하면 이치에 맞으며 아담
한 지조를 스스로 지키니 아는 이나 모르는 이가 그 하는 바를 보고
모두 나라의 인재라 하였다. 계해년 중흥을 만나서는 문예를 가지고
과거 응시해서 늘 합격하니 명예가 성대하였다.
124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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