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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원군 이만 신도비
[두전] 대사헌완원군이공신도비(大司憲完原君李公神道碑)
유명조선국가선대부사헌완원군이공신도비명병서
有明朝鮮國嘉善大夫司憲完原君李公神道碑銘幷序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경연춘
추관 성균관사 세자좌빈객 조경은 짓다.
輔國崇祿大夫 判中樞府事兼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經筵春
秋館 成均館事 世子左貧客 趙絅 撰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겸 영경연사감 춘추관사 허목은 전
자를 쓰다.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兼 領經筵事監 春秋館事 許穆 篆
공의 휘는 만(曼)이고 자(字)는 지만(志曼)이니 나라 임금과 같은
성씨이다. 나이 24세에 무진(戊辰)에 장원급제해서 인조 효종을 이어
금상까지 세 임금을 섬기니 역임한 바 내직외직이 작은 데로부터 나
타나고 낮은 데로부터 놓아져서 계는 가선에까지 오르고 봉군으로는
완원군(完原君)이 되고 벼슬로는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향수는
경우 환갑을 살고 돌아갔으니 아들 진사 증이 공의 상사를 받들어
대흥현의 선영 북쪽 기슭 계좌 정향한 언덕에 장사 지내고 일이 마
치자 궤연을 서울로 모시고 급급히 공의 선계와 행실 상소문 등을
기술해서 빠뜨리지 않고 초췌한 모습으로 상복을 입은 채 나의 집에
찾아와서 엎드려 이르되 “오직 어르신네만이 우리 아버지를 아시니
감히 우리 아버지를 썩지 않게 하는 일로 어른께 번거롭게 합니다.”
제2장 고적(古蹟)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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