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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석희(李錫禧) 선정비(善政碑)
이 비석은 이석희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공세창지(貢稅倉址) 앞에
다른 비석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석희는 조선말기의 문신(文臣)으로 아산현감을 지냈는데, 재임시의 애민정신(愛
民精神)과 선정을 기리기 위해서 이 비를 세웠다. 비는 갈(碣)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데, 위쪽이 아래쪽 보다 약간 넓게 되어 있다. 비문은 뚜렷하게 남알 있으나 건립연
대는 알 수 없다.
4) 이의만(李宜晩 선정비(善政碑)
이의만은 1650년(효종 1)에서 1736(영조 12)까지 활약한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선응(善應), 호(號)는 농은(農隱).
1691년 증광문과(憎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及第)하여 관직에 나갔다가 사간
원정언(司諫阮正言)으로 있으면서 지방수령(地方守令)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체직되
어 영해부사(寧海府使)등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10여년간 홍문관(弘
文館)에서 재직하다가 1722년에 승지(承旨)로 발탁되었고, 이어 충청도·함경도 관
찰사를 거쳐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이르렀다. 청렴결백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죽었다. 시호는 정정(靖貞)이다.
강희(康熙) 47년명(年銘)으로 보아 비석의 건립 연대는 숙종 34년(1708)으로 보인
5) 이진휴(李震休) 선정비(善政碑)
이진휴는 1657년(효종 8)에서 1710년(숙종 36)까지 활약한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백기(伯起), 호(號)는 성재(省齎).
1677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82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及第)하였으며, 1686년에는 전적(典籍)으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병과(兵科)
로 급제하였다. 1700년에 도승지(道承旨)·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거쳐 1701
년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송사(訟事)를 편청(偏聽)하였다는 사헌부(司憲府)의 탄
문화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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