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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소녀시절

남,
오경예는의당면가산리출신이다.마을의중농으로살아온아버지는매우엄하면서도

자상한 사람이었다. 일찍 담배 농사를 지어 재산을 일구었고 딸들을 아들 못지않게 사랑



하여아들에게는회초리를들어도딸들에게는군밤도때리지않은분이었다.어머니가명


을 잣고 명주를 짜는 분이라 딸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아버지는 “시집가면 지겹게 할 일을


왜지금부터시키느냐?”며어머니를나무라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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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보살같은분이셨다.당신은명과명주를하느라고생하셨지만딸들에게는권
하지않았고,남편이아무리술을마셔도아들딸이보는앞에서는불평없이아버지술시
중을드셨다.
이런이유로그녀는소녀시절을자유롭게보냈다.성격이괄괄하여사내들이즐기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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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기와 자치기를 즐겼으며 줄넘기며 고무줄놀이며 남자아이들의 놀이도 거침없이 함께
할수있었다.
“다른애덜부모는여자가사내애덜노는놀이를하면혼내셨는데우리집은그걸루말
한사람은오빠였지,아부지어머니는나무라시지않었어.”
친구들과 가산리에서 즐겨한 놀이로 보리풍년 윷놀이를 기억하고 있다. 닭이모가지 외
에 15종을 떠올렸는데, 필자의 시연을 보고 가산리에서 하지 않은 놀이는 돼지보기, 떡장
사,허공상투잡기,솥단지걸이,돼지울간,코찔찔이라고했다.
15식구의시댁신혼살이
1956년 그녀의 나이 열아홉에 결혼했다. 당시 시댁은 연기군 서면(현재의 세종시 연서
면)이었고 가산리에서 서면까지는 가마를 타고 갔다. 그날 밖에서 떠드는 가마꾼들의 이
야기가한마디도들리지않을정도로설레었다.
시댁은대가족이었다.남편의형제가남자5명,여자3명이고한명의손위동서가있었
는데남편은결혼후1년이안되어군대에갔다.그러니까시댁의열세식구가있는집에서
스무살된새댁혼자살게된것이다.
“그래두시아주버니가이상한일을하기까지신혼살이는살만했어.”
시아버지가마음착한분이었고새댁이혼자산다하여집안사람들이모두아껴주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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