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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묵호어딘가학교에서피난할때양쪽으로얼마나폭탄이떨어졌는지,그게무서워서입
에다힘을얼마나줬는지이빨이아파서음식을씹지도못한날도있었어.”
신혼에건강을잃고
이규녀 씨는 24세에 강원도 횡성의 동갑나기 박천균과 혼인하였다. 어머니가 사위라도
배 안 타는 사람을 얻고자하여 아들만 다섯을 둔 집안의 맏며느리로 보낸 것이다. 횡성은
주문진보다내륙이었지만시댁도동란의아픔을크게겪은집안이었다.시어머니를전쟁통
에잃어서홀시아버지와아들다섯,남자만여섯인집으로시집간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생긴 어지러움은 몸이 나약했던 그녀를 더 나약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평
생 해본 적 없는 농사일과, 여자 혼자의 몸으로 꾸려나가야 하는 집안 살림의 어려움이 더
해져 복막염을 앓게 되었다. 늑막에서 물을 빼내는 수술을 받고 겨우 회복되었지만 장남을
임신한뒤8개월만에다시재발하였다.
“시아버지가 주사를 놔줬어. 남편은 할 줄 모르고 시아버지가 병부터 치료하자면서 주사
를 놔 주시는데 시아버지 앞에 엉덩이를 내놓고 주사를 맞었으니 얼마나 어려워. 부
끄럽고”
시집온 후 늘상 시름시름 앓는데도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끔찍히 위해주었다. 그 덕에 남
편이 잔정이 없는 사람이었고, 살아가는 집도 산 밑 외딴 터였지만 이겨 낼 수 있었다. 그녀
는 시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해 추석이나 설이면 매번 정성스럽게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바느질을해드렸다.
“김신조난리”에공주로이주
아들 둘, 딸 하나를 낳고 살던 중 북한군이 청와대를 노리고 침투하였던, 속칭 1. 12사태
가 터졌다. 이 사건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규녀 씨는 지금도 그 사건을 “김신조
난리”라고말한다.처참했던6.25의기억은난리가나면차라리자살하는게낫다는생각이
들 정도 였는데 전쟁통에 아내를 잃은 시아버지는 그런 마음을 이해하여 「전쟁이 나도 살
수 있는 땅」으로 계룡산 아래를 선택했다. 마침 시아버지의 처조카 한 사람이 경천리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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