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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 서씨부인은 의령인 남식(南?)에게 출가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서씨부인의 3형제 중에서 큰아들이 남일성(南一星)이다. 둘째아들은 남이성(南二
星)으로 예조판서를 지냈다. 서씨부인의 외동딸은 오달제(吳達濟)에게 출가했다. 오
달제는 해주인으로 병자호란 때 삼학사로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했다.
서씨부인의 3형제 중에서 큰아들인 남일성은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그 외
아들이 약천 남구만이다. 서씨부인은 남구만의 친할머니이며, 연산서씨 집안은 남
구만의 진외가인 것이다.
남구만의 탄생 전설이 전해오는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과 연산서씨의
세거지인 구항면 지정리 지석마을은 얕은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아주 가
까운 거리에서 두 집안이 사돈지간의 인연을 맺고 대대로 살아왔다. 남구만도 아버
지를 따라 연산서씨 집안과 가깝게 오가며 어울렸을 것은 충분이 짐작할 수 있다.
(2) 연산서씨 선영에 전해오는 남구만의 묘갈명
연산서씨 집안에는 남구만이 직접 쓴 여러 기록들이 전해온다. 가장 대표적인
기록이 연산서씨 선영에 서있는 묘갈명이다.
연산서씨 집안의 선영은 지석마을 보개산 남쪽 기슭에 있다. 이곳에 처음 입향
한 서주의 묘를 비롯하여 후손들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남구만이 쓴 묘
비가 있다. 남구만의 외증조 할아버지인 서주를 비롯하여, 서주의 아들인 후적(後
積)과 효적(效積)의 비문도 전해온다.
(3) 남구만의 만사(輓詞)
한편 지석마을 연산서씨 집안에는 남구만이 쓴 만사(輓詞)도 전해오고 있었다.
이 만사는 할머니 친가댁 상사시에 썼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2019년 겨울에 만사
를 보관해오던 후손 집이 누전으로 전소되었다. 집안에 소중하게 전해오던 남구만
의 만사도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사진과 기록이 남아있다. 만사 말미에는 ‘戚姪 大匡輔國 崇祿大夫 領中
樞府事 南九萬 哭挽再拜(척질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중추부사 남구만 곡만 재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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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토문화(洪州鄕土文化)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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