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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金氏)이며 계흠(季欽)과 계우(季友)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전계흠은 문과를 거쳐 승훈랑으로 공주판관을 지냈으며 전계흠의 외아들 희(禧)는 무관으로
사정(司正)을 역임했다. 전희는 오륜(五倫), 오상(五常), 오기(五紀), 오행(五行) 등 네 아들을 두었다.
둘째 전계우는 부사정을 지냈으며 아들 간손(幹孫, ?~1507)은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
지 않고 은일로 지냈다.
전민의 묘는 배방읍 회룡리 배방산 남쪽 기슭 종중 묘역에 있었으나 실전되어 단을 만들어 모셨고
그의 아들 공주판관 전계흠의 묘도 근처에 있다. 전민의 후손들은 회룡리를 중심으로 하여 배방읍 각
지와 탕정면 일대, 온양, 천안 등 각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전민의 아들 공주판관 전계흠의 묘-
[129] 동래정씨 정걸선
| 鄭傑先
<1667년(현종8년)~1750년(영조26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동래정씨(東萊鄭氏) 22세이며 문익공파(文翼公派) 아산시 지역, 실옥동 시루골
입향조이다. 선대는 오랜 동안 경기도 화성시 지역에 거주하였고 여러 대의 묘소가 반월면 속달리,
현재 군포시 지역에 있다. 현재 시루골에 거주하는 32세(世) 정인환(鄭寅煥, 78세)씨의 10대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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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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