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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보령시?
김호준 씨의 할아버지는 유인석 의병진에서 활동하
보령의?바다
며 소의신편을 지은 김화식 선생이다. 김화식 선생의
간척마을로
첫부인은당진에살때작고하였고,둘째부인을얻었
다. 첫 부인은 1남1녀를 낳았고, 작은 부인은 2남3녀
이주한항일의병
를 낳았다. 김호준 씨는 작은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의
후손의생활
장손자이다.김화식선생은큰아들을분가시키고부인
과함께생활하면서손자인김호준씨와함께살았다.
김호준 씨는 1935년에 태어나 학교에 가지는 않고,
한문을 조금 배우다 8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후에는농사일만하였고,이후서울로이주하여5년간
공사현장에서 일했다. 이후 아버지가 계신 남포면 삼
김호준(1935년생)?
현리로 이주하여 공사현장에서 일하거나 농사일을 하
보령시?남포면?삼현리?
면서 할머니와 부모님을 부양하였다. 결혼 후 슬하에
딸하나를두어출가시켰다.
김화식 선생은 의병활동 때에는 김화식이라는 이름
을 사용하고, 호적에는 김우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
였다. 원래 돌림자는 「재」자인데, 구술자의 5대조 할
아버지, 김화식 선생의 할아버지 이름이 「재인」이기
때문에 피하느라 화식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호적 이
름과 의병활동 할 때의 이름이 서로 달라 독립유공자
로인정받는데고생을많이하였다.
김화식 선생은 어렸을 때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
어져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한쪽 눈을 가진 사람이 의
병진에 참여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
김화식선생은의병활동이후보령청소면에서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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