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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연기군 금남면 지역에 거주하였다.
그의 고조는 전흥우(田興雨), 증조는 전원색(田元穡), 조부는 전선재(田善栽)이다. 아버지는 전서운
(田瑞雲)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로 김경연(金敬連)의 딸이다.
철현(喆顯), 익현(益顯), 모현(謨顯) 3형제 중 둘째인 전익현의 자는 사인(士寅)이다. 부인은 광산김
씨(光山金氏)이며 김시택(金時澤)의 딸이다. 그가 온 시기와 연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략 200여 년
전이다.
전익현은 용성(龍聖)과 인성(麟聖)을 두었다. 큰아들 전용성이 경천(慶天), 경대(慶大), 경삼(慶三)
등 세 아들을 두었다. 그 중 큰아들 전경천(田慶天)이 음봉면 용혈리(산동1리)로 이주하였는데 사연
을 알 수 없다. 전경천은 부인 해주오씨(海州吳氏) 사이에 시균(時勻), 덕균(德勻), 풍균(豊勻), 제균
(濟勻), 영균(永勻) 등 아들 다섯을 두면서 후손이 늘게 되었다.
한편, 전익현이 올 때 동생 전모현이 함께 송악 종곡리로 들어왔다. 음봉면 산동리 지역은 큰아들
쪽 후손이고 송악면 종곡리와 마곡리에는 작은아들 후손으로 이어져 왔다. 전익현의 묘는 송악면 거
산리 구만이에, 전모현의 묘는 갈재에 있다. 후손들은 세거지인 송악면 종곡리와 마곡리, 음봉면 산
동리를 중심으로 온양, 천안, 서울 등 각지에서 살고 있다.
[128] 천안전씨 전민
| 全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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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천안전씨(天安全氏) 41세이자 문효공파 아산시 지역, 배방읍 회룡리 입향조
이다. 선대는 천안 풍세면 삼태리 일대에 거주하였다. 그곳은 천안전씨의 발상지로서 백제(십제) 개
국공신이자 천안전씨의 도시조인 환성군 전섭(全攝)의 묘단(墓壇)과 제실이 있다. 전민은 현재 회룡
리에 거주하는 후손 58세(世) 전해옥(全海玉, 일명 영홍泳弘, 89세)의 17대조이다.
전민의 고조는 고려 후기에 문과 급제 후 상의도감사(商議都監事)를 지낸 전신(全信, 1276∼1339)
이고 증조는 사의서승을 지낸 전성안(全成安)이며 조부는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선부전서에
오른 전덕방(全德芳)이다. 아버지는 진도군수를 지낸 전근(全謹)이고 어머니는 제주고씨(濟州高氏)로
부사 고선(高
)의 딸이다.
전민은 호(皓), 교(皎), 민(敏) 등 3남 중 셋째아들이다. 생원으로서 연산현감(連山縣監)을 지냈기 때
문에 후손들은 그를‘연산공(連山公)’
으로 칭하며 그는 연산공파의 파조가 된다. 부인은 광산김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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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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