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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인동장씨 장훈주
| 張勳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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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인물로 인동장씨(仁同張氏) 23세(世)이며 태상경공파 아산시 지역, 음봉면 동암리 입
향조이다. 현재 신동에 거주하는 33세 장기선(基善, 68세)씨의 10대조이다.
그의 고조는 무과 급제 후 통덕랑으로 부사직을 지낸 장효문(張孝文)이고 증조는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을 지낸 장인기(張仁紀)이며 조부는 감찰을 역임한 장호(張晧)이다. 아버지는 무과 급제 후 신
천군수에 오른 장신한(張信翰, 1605~1678)이며 어머니는 밀양손씨로 손상권(孫尙權)의 딸이다.
장훈주은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일명 득주(得周)이다. 족보에 기록된 관직은 확인되지 않는다. 부
인은 천안손씨(天安孫氏)라 되어 있으나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밀양손씨나 천안전씨의 오기일 것으
로 보인다. 그가 음봉 대동리로 온 시기와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밀양손씨이니 가까운
탕정면 명암2리 장목 마을이 밀양손씨 세거지임을 고려하여 외가 근처로 들어오게 된 것으로 추정한
다. 혹은 아들 세용(世龍)의 부인이 전의이씨인 점에 근거하여 아들의 혼인으로 아들이 먼저 들어온 뒤
에 합류하였거나, 아들이 실질적인 입향조인데 아버지의 묘를 근처에 모셨기 때문에 집안에서 그 아버
지를 입향조로 여긴 경우일 수도 있다. 집안에서 명확히 주장하는 대로 일단 장훈주를 입향조로 본다.
시기는 그의 아들 장세용(1648~1712)의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하여 대략 360년 전쯤으로 추정한다.
그의 선대는 풍덕(개성 개풍)에 있었기 때문에 장훈주의 후손들은‘풍덕에서 왔다 하여 풍덕파(豊德
派)’
로 자칭한다.
장훈주는 세용, 세일(世一), 세백(世伯), 세막(世莫) 등 네 아들을 두었고 큰아들만 온양지역에 거주
하였다. 장세용은 영현(寧顯), 수현(壽顯), 정현(貞顯) 3남을 두었으며 역시 장남이 고향에서 대를 이
어갔고 이후 후손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훈주와 그의 직계 후손 수대의 묘는 온양 청당리, 지금의 풍기동에 있었으나 탕정면 명암4리로
이장하였다.
[127] 담양전씨 전익현
| 田益顯
<1766년(영조42년)~1805년(1829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담양전씨(潭陽田氏) 23세이며 경은파(耕隱派) 아산시 지역 송악면 종곡리 입향
조이다. 현재 음봉면 산동리 용혈리에 살고 있는 30세(世) 전병기(田炳基, 55세)의 7대조이다. 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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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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