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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서원 역사와 서원 복원의 필요성
김구(金絿) · 박세희(朴世熹) · 박훈(朴薰) · 이자(李?) 등은수년간유배
생활을 하였다. 기묘사화에 관련되어 화를입은 학자들을 ‘기묘명현’
이라 한다.
기묘사화직후조정의요직은훈구파로개편되고현량과도폐지되
었다. 지치주의 도학파의 이론과 실천의 기반이었던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이 금서로 지목되어 배우는 것이 엄격히 금해졌다.
지치주의를내걸고일세를경륜하려했던도학파학자들의용기와
정성은높이평가할 만하다. 다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보여준
행동의 면면을 보면 지나친 점이 없지는 않았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들의날카로운기개와지나친 자기 확신을우려하였다. 또임금의
역량과시의(時宜)를살피지못한데대해서도그들의총명을의심하
였다. 당시조광조의주위에는연소기예(年少氣銳)한과격론자들이많
아서, 급류(急流)에서용퇴를희망했던조광조로서도중도에돌아서지
못할처지에있었다.
조광조의불행은너무빠르게출세한것과, 벼슬
4)
에서물러나고자했으나뜻을이루지못한데서비롯된측면이많다.
퇴계 이황은 조광조의 학문 역량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였다.
5)
그러나 ‘급진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
다. ‘급진적’이라는것은지치주의개혁정치가실패한원인을분석하
는과정에서나온것이다. 조광조등이추진한개혁정치는결과적으로
실패하고말았지만, 이는반정(反正) 직후라는 특수한상황에서나왔
다. 따라서 그 본래의 취지는 잘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해 조광조의
말을 직접 살피기로 한다.
4) ?退溪文集? 권48, 31a, 34b, ?靜庵趙先生行狀? “先生盖已見其幾, 知道之難行,
而欲避久矣.”, “奇公遵嘗發山林獨往之歎, ?稱?焉, 則急流勇退, 本其雅素之
志也.”
5) ?退溪言行錄? 권5, ?類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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