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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지역학으로서의예산학의지속가능성검토
등등은예산의문화적자존감과상징성을잘 보여준다. 그래서윤용혁은
충남 도청의 예산, 홍성 시대의 시작이 이같은 예산의 중심성을 토대로
이루어진,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라고 그 의미를 되새겨 주목하게 한다.
2) 예산의 역사와 문화성격
(1) 예산(대흥)은 660년 나당군에 의한 부여 함락 이후 663년까지 4년
에 걸친 백제 부흥전쟁의 거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다름아닌백제시대대흥지역(임존성)이내포의거점이었기때문이
다. 여기에는 백제의 ‘서방성(西方城)’이 설치된 곳이었다. 백제는 전국을
동서남북중, 5방으로 나누었다. 일종의 광역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셈이
다. 그가운데도성의서쪽지역이‘서방’이고, 이서방이야말로대략오늘
날 내포지방에 해당한다. 이 서방성의 치소가 바로 대흥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임존성은 백제 부흥운동의 횃불을 올린 시발지인 동시에 부흥운동의
최후를 장식한 현장이다. 660년 당군 13만, 신라군 5만의 18만 대군이
수륙양면으로백제를공격, 부여와공주를차례로함락하였다. 나당군에
의한부여함락이후백제부흥운동의거점이되었던곳이대흥의임존성
(봉수산성)이었다. 흑치상지와 복신, 도침의 부흥군은 처음 임존성에서
당의 소정방 군을 막아 내었고, 이에 소정방은 의자왕과 여러 왕자를
포함하여 백성 1만 2천 800여 인을 포로로 하여 뱃길로 귀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듬해 9월 왕자 풍이 귀국하여 항쟁하지만, 자체 내분으로
663년9월주류성이함락되고 10월나당군이방어거점인 임존성을 공격
하고지수신(遲受信)이 저항하였지만 11월에 임존성은 당군에 의하여함
락되고백제부흥운동도4년만에종식되었다. 663년11월에부흥운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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