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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신라군 속에 정예병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신라군이
5회전에서 역전승을 거둔 것은 어린 화랑인 관창?반굴의 영
웅적 죽음이 사기를 드높였기 때문이다. 뜻밖의 계기로 신라
군이 죽기 살기로 덤벼든 것이 전세를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8
은고는 낙화암에서 뛰어내렸나?
드라마에서는 은고가 낙화암에 신발 두 짝을 벗어
부여 백마강변의 낙화암
놓고 뛰어내렸다고 했다. <일본서기> ‘제37대 사이메이
천황’편에 따르면, 은고는 남편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
-9
삼천궁녀는 정말 있었나?
드라마에서는 은고 홀로 낙화암에서 투신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삼천궁녀는 존재한 적도 존재할 수도 없었다. 백제보다 훨씬 더 큰 조선에서도 궁녀 숫자
는 최고 684명이었다. 304만~380만 명으로 추정되는 백제 인구에서는 170명 이상의 궁녀가 나올 수 없
다. 또 고대 동아시아인들이‘제왕에게는 많은 궁녀가 있다’
는 뜻을‘제왕에게는 삼천궁녀가 있다’
과장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에서도 삼천궁녀란 말이 관용적으로 사용됐지만, 실
제로 어느 황제도 3천 명의 궁녀를 거느리지 못했다. 한편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낙화암에서 떨
어진 여인의 숫자는 10명 내외라고 고증했다.
-10
백제는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나?
이번 질문에는 정해진 답이 없어서‘A’
를 표기하지 않았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가 망한 뒤 왜국은 백
제부흥운동을 벌이고 백제 유민들을 수용하며 그들에게 관직을 내주는 한편 사회체제를 크게 혁신했다.
그런 작업이 완료된 뒤인 671년에 왜국은 국호를‘일본’
으로 바꾸었다. 왜국 토착민과 백제 유민을
아우르는 새로운 나라, 일본이 세워진 것이다. 660년에 의자왕이 백기를 들었으니 백제가 죽었다고 볼 것
인지, 671년에 백제 유민들이 일본 건설에 동참했으니 백제는 죽지 않았다고 볼 것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글쓴이 소개
김 종 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동양사 전공 박사수료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한국사 인물통찰’강의 중
?오마이뉴스‘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연재 중
?문화제청 헤리티지 채널‘TV속 역사읽기’연재 중
12 |
2011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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